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martobject Mar 21. 2024

열심히 표류하다

실패

 대학교의 모든 것은 낯설었다. 능독적으로 교실을 찾아가야했고, 궁금한 무언가가 생겨 찾아가 여쭤볼 담임선생님도 없었다. 나의 첫 건축설계수업. 어떤 학생들과 교수님이 기다리고 있을까. 수업교실문을 열었을 때, 열명이 간신히 들어가는 공간의 길쭉한 교실이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친한사이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각자 어쩌다 이번 강의신청에 실패하여 이 클래스에 흘러들어왔는지 푸념을 나누고 있었다.


 공간이 좁다보니 본의아니게 이 수업이 얼마나 악명높은지 엿들을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 너무 많은 양의 과제를 내어주며, 한 클래스에서 A+ 점수를 거의 안주거나 유일하게 한명에게 주기로 유명한 교수님이었다. 또, 얼마나 까다로우신지 과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두려워하는 분위기였다. 어쩐지 늦게 시작한 수강신청에서 유일하게 자리가 여유있었던 수업이었다. 그래도 내가 무장한 성실함과 열정이라면 그 어떤 역경도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그 당시 난 스무 살이었다.




 소문대로 그 수업의 난이도는 엄청났다. 교수님은 과제를 내어준다기 보다 들이부었다. 처음으로 사람이 이틀 밤을 샐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스무 살의 객기 또는 열정같은 것으로 모든 과제들을 마무리했다. 사실 그 건축과 수업은 전공을 바꾸기 위해 신청해 들은 건축과의 수업이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건축과 학생들을 위한 작업, 수면, 세면 공간이 교내에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 같은 수업을 듣는 그 사람들에게 나는 단번에 낯선 이방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표류하고 있으면서 내가 표류된 사실을 모른채 떠다녔다. 난 갈길을 잃은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헤엄치고 있었다 .


 그 날도 난 출근길, 등굣길 인파속을 헤엄쳐 등교했다. 한 팔은 버스 손잡이를 잡고, 나머지 한 팔과 옆구리에 과제물 더미를 간신히 끼고. 처음으로 이틀 밤을 샌 경험이었다. 그 날 수업, 나의 발표 순서는 마지막이었다. 내가 준비한 첫번째와 두번째 과제를 마치고 세번째 창을 띄웠을 때, 교수님은 ‘아 맞다.’ 하며 나머지 학생들에게 해당 과제를 왜 발표안하는지 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과제를 해오지 않은 것이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들이 나를 제외하고 한 공간에서 밤을 새는동안 이 세번째 과제를 발표하지 않기로했을 것이다. 교수님은 너무 많은 과제를 들이부으면서 자신이 낸 과제를 종종 잊은 적이 있다. 한 두번은 눈치껏 같이 함구했다가 이번에 내가 기밀 과제를 오픈해버린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세번째 과제의 발표는  눈치없는 행동이나 실수가 아니라 본능에 충실하여 나온 계산된 행동이었다. 같은 수업의 학생들은 차려진 공간에서 편하게 부대끼며 해당과제를 묻어버리자고 입을 맞췄겠지만, 내가 알 턱이 있나. 게다가 이틀 밤을 꼬박 세었던 터라 이제와서 숨겨주기엔 단연 억울하다.


 시간이 지나 같은 수업 학생들과 친해지기를 소망했지만 친해지기는 커녕 밉상의 이방인이 되었고. 밉상이 된 댓가로 그 힘들다는 A+학점을 받아냈다. 실력이 독보적이거나 감각적이지 않았지만 그 시절 그 성실함에 누가봐도 타당한 보상이었다. 전공학생들을 제치고 혼자 그 시련들(정확히는 말도 안되는 과제들)을 극복해 이겨낸 것이 정말 달콤했다. 꿈 꿨던 건축디자이너의 내 미래가 살짝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 결실의 열매를 들고 학과사무실로 들어가 나의 전과를 요청하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두근두근!




 전과가 안된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난 전문계고 출신이었고, 그 전형으로 들어왔다. 즉, 전문계고 학생들과 경쟁해서 입학한 것. 교칙상 해당 전형의 학생은 전과가 불가하다고 했다. 나의 출신이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순간 나의 고교생활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없애고싶은 부끄러운 시절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런 괴랄한 교칙을 철두철미하게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터졌다. 사람은 정말 어이없게 실패를 직면했을 땐 웃음이 터진다. 머리가 큰 지금도 난 그 교칙이 이해되지 않는다. 입학시키고 투명한 유리벽을 쳐버릴거라면 애초에 받지를 않아야했다. 전문계고 출신이라는 낙인을 찍은거나 다름없었다. 이십 대 초반 숫기없는 내가 여기저기 교수님 방문을 두드리고 목소리를 냈어도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줄 귀인은 없었다. 처절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대학은 철저히 어른이되는 장소다.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교문 밖 부터 철저히 혼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시스템에 대한 울타리도 없고, 동행할 친구들도 없다. 그렇게 인생을 배웠다. 세상엔 안보이는 벽이 존재하고 그 벽을 이해하고 스스로 살펴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열심히 헤엄치는 것인지 처절하게 표류하는 것인지 스스로를 돌이켜봐야한다. 인생이 단 1회차기 때문에 발생한 그 시절의 로스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멋진 건축물을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좋게말해 경험으로 인생을 배운거지만 꿈에서 뒷걸음질 친 것은 꽤 쓰고 오래간다.

 


                    

작가의 이전글 닭꼬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