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용기

꿈은 이루어진다

by Smartobject

남자는 가장 안정적일 때, 불안감을 느낀다. 스무 살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었고, 스스로 공감했다. 아마 그 어린 나이에 감히 스스로의 삶이 안정적이라고 오판했을 무렵이다. 다시 그 문장을 상기하는 지금도 현재 안정적이라 착각하고 있는 중일테지. 그럼에도 나는 이 흐릿한 불안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7년의 다사다난한 프리랜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회사 생활을 하는 중이다.


‘이 곳 취업에 실패한다면, 난 정말 식당에서 일해야한다.’


식당이 지옥도 아닌데, 마치 이번 면접에서 마저 떨어지면 죽어버리는 유언 처럼 그 말을 세뇌했다. 유일하게 면접으로 날 불러주고 합격하여 다니게 된 중견기업이었다. 여러 부류의 디자인 대행 업무만 하던 나에게 자사 브랜드의 디자인만 진행하는 업무는 호흡도 느리고 쉬웠다. 그렇게 다섯 개월이 지나자 나에게 그 문장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남자는 안정적일 때, 불안감을 느낀다.’ 딱히 남자라는 말에 꽂힌 것은 아니고 안정적일 때 오는 불안감에 나는 꽤 공감했을 터. 적당히 안정적인 수익과 개인 일상의 황금 밸런스의 시기. 계약직이지만, 어떻게 이 곳에 터를 깊게 잡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회사생활을 했다.


회사가 컸기 때문에 큰 전시에 나갈 수 있었는데, 중동의 외국인 바이어가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영어 물음에 꿀 벙어리가 되었다. 친구같다고 생각했던 또래의 동료가 능숙히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이 조직과 내가 멀게 느껴지고 이 자리 마저 내 자리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되새겨보니 수치심에 가까웠다. 고작 영어를 못해서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니. 그렇게 영어 과외까지 시작하게 되었다.


‘배움’이란 것에 대한 중독이 생겼을 쯤이다. 난무하는 각종 클래스를 찍어 먹어보듯 배우는 과정에서 기술을 흡수하는 요령이 생겼다. 마치 그런 취미를 배우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영어를 배우고있었다. 어느 날 함께 영어를 배우던 친구는 나에게 왜 배우는지에 대해 물었다. 놀랍게도 난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이전 이십 대 부터 영어 공부를 하겠다며 보지 않을 교재를 사고, 듣지 않을 강의를 구매했던 날들에는 항상 목적이 있었지만, 되려 공부가 잘 되고있는 지금의 나는 그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야 현재 상황의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


이 회사를 계속 다녀서 뭐할건지에 대한 나의 계획이 없다. 아아 이십 대 중반에 회사를 다니고 하염없이 돈이나 모으다가 했어야할 고민을 지금에서야 부딫히다니. 생각보다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막연함에 빠졌다. 이 마저도 친구와 도넛을 먹다가. 무미건조해진 영어 수업 태도와 회사 생활 태도를 지적받아 이야기하다가 깨달은 것이다.


‘꿈은 이루어 진다’라는 말이 있다.


월드컵 때나 들었던 말.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저 한 줄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삶의 쾌답같은 문장인지 알게된다. 어른이 될 수록 꿈을 꾸는 행위는 공상에 잠겨있는 것이다. 즉, 현실적이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현실적인 케이스를 뒤늦게 쫓는다. 어쩌면 꿈을 잃지 않고 계속 꾼다면 거의 대부분 이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잃어가서 이루지 못하는 문제일 뿐. 나는 사실 꿈을 살짝 잃었다. 좋게 말한다면 현실적이 된 것이다.


내가 만든 브랜드가 잘 될거라는 기대는 있지만, 실패할 수 있다며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나고 있다. 한 발 더 앞서보려다가 헛 수고가 될까, 발을 딛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꿈을 이루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리고 있던 것이다. 실패했던 경험을 교재삼아 덜 수고하는 지금의 나의 태도는 잘못되었다.


아 맞다. 실패할 용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손에 쥐고있는 것이 많기 때문인지 이 정도의 삶이 안도되기 때문인지. 실패할 용기는 나날이 줄어든다. 예전 처럼 이루어진다고 믿으면서 일단 하자. 바로 오늘이 실패할 용기가 최대치인 상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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