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로 깊게 들어간다는 점에서 몰입은 현실 망각을 불러일으킨다. 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현실은 괴롭기에, 우리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끊임없이 ‘몰입할 것’을 찾는다. ‘뭐 재밌는 거 없나’라고 되뇌이면서. 이런 걸 보면, 재미라는 건 괴로운 현실과 분리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현실을 잊고 듣게 되는 이야기’다. 즉, 재미를 위해선 상대방을 몰입시킬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일찍이 알아챈 영리한 이야기꾼들은 깊은 몰입을 위해 이런 전략을 세웠다.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을 것.’
괴로운 현실을 깨부수는 가상의 인물, ‘영웅’이 탄생했다. 영웅이 싸움터로 나가는 계기,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모습, 전투가 끝난 뒤의 후일담은 모두 훌륭한 몰입의 재료가 되었고, 영웅 이야기는 수천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몰입시키고 있다.
어렸을 적 접한 이야기 속 영웅은 모두 ‘선한 사람’이었다. 당연하다. 악을 미워하는 건 우리의 본능이고, 어린 아이는 본능에 충실하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고, 세상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영웅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이때부터 ‘영웅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식상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신선한 이야기를 만났다. 영화 ‘펄프픽션’이었다. 분명 갈등도 있고 사건도 명확한데 주인공이 영웅이 아닌 것이다. 딱히 본받을 만한 것이 없는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들의 감정에 몰입이 되는 걸 느끼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루드비코의 ‘인터뷰’를 보고 느낀 즐거움은 펄프픽션과 비슷했다. 이상한 사람이 겪는 이상한 사건, 이상한 사람이 적은 이상한 이야기. 이야기의 모든 요소에 이상함이 녹아있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지 더욱 더 예측을 할 수가 없다. 그저 눈앞에 놓인 상황을 그때 그때의 절박한 임기응변으로 헤쳐나갈 뿐이다. 배우와 관객은 서로 호흡을 공유하기에, 관객은 배우와 함께 절박한 임기응변 속에서 가쁜 호흡을 몰아쉰다. 이는 선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동물적인 몰입이다.
루드비코 작가는 짓궂게도 사람을 이렇게 몰입시켜놓고 퍼즐을 풀린다. ‘맛있게 매운’ 수준의 복잡함으로 서로 뒤엉킨 이야기와 사건들. 일상생활 수준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를 파악할 수 있다.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머리까지 써야 한다니, 이건 마치 좀비가 뒤에서 쫓아오는데 퍼즐을 풀어야 하는 상황 같다. 어라? 이거 방탈출 카페 아냐?
맞다. ‘인터뷰’를 보고난 뒤 느낀 쾌감은 방탈출 카페에서 탈출한 직후의 쾌감과 닮아 있었다. 감정과 두뇌를 좁고 깊은 곳에 모두 쏟아부었다가,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개운하게 ‘아, 재미있었다’를 말할 때의 그 쾌감. 그래서 ‘인터뷰’는 재미있었다.
덧.
이 작품은 감각적인 작화와 극적인 장면 전환도 돋보인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본문에 적고 싶었으나 끼워 넣을 곳이 없어서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세히 적어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