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안녕~~?!>
나는 올 해로 18년 차 텔레마케터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보다 여러모로 인식은 좋아졌지만 이젠 AI시대인 만큼 필요로 하는 숫자는 줄어들고 있긴 하다. 그래도 백세시대도 함께 진행되는 만큼 숫자가 갑자기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건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그럼 난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하고 오래 하기는 힘든 일'
2002년 홈쇼핑 고객센터로 시작한 이 일은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를 나에게 추억처럼 남겨줬다. 그중 하나는 '썩은 고구마 한 박스를 받고 화가 난 고객이 신입상담원에게 본사주소를 알아내고, 사장실까지 와서 고구마 한 박스를 모두 던졌던 일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어느 날 살림을 하는 남자고객님의 주문내역을 배우자라며 주소를 상담사에게 말하도록 유도해서 알아낸 후 내연녀가 있다는 걸 알아내고, 고소까지 간 일도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한 상담사가 출산예정일을 잘 못 잡아서 회사에서 출산할 뻔한 일도 있었다. (119는 누가 불렀을까요??ㅋㅋ) '
이 외에도 수많은 에피소드를 현장감 있게 말하자면 몇 시간이 걸릴 만큼 무수히 많다. 바로 앞서 말한 에피소드들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은 주변 상담사들의 에피소드이지만 '나에게도 첫 콜을 받은 그날부터 최근 마지막 콜까지 매 순간마다 긴장과 스트레스는 끝나지 않는 콜까지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양파 벗기 듯 이야기가 하나하나 오랜만에 생각날 것 같다.
그래서 난 스트레스가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나름의 해소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본다. '운동부터 문화생활, 스윙과 일본어공부, 독서, 영화, 다양한 사람들과의 수다, 소풍과 여행 등등 소소한 해소법만으로는 나에게 쌓인 강력한 스트레스들을 해소시킬 수는 없었다.' 매번 애사심으로 길게 다니고 싶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대기업까지도 인력관리를 하고 싶지 않기에 파견사의 계약직이나 도급직으로 아주 기본적인 월급을 주며 등급으로 적은 금액의 인센티브를 나눠줬기 때문에 미련 없이 그만두게 된 거다.
또한 잠깐의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했고, 그래서 난 퇴직금으로 도쿄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물론 지인들도 만날 수 있어 아주 잘 다녀왔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도 크지 않지만 도움이 됐다. 또한 다음 직장을 구하는 데 있어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여유가 생기다 보니 어느새 텔레마케터로써 다른 업무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달라진 관점에서 바라본 ‘갑이 되어 당당히 전달할 수 있는 채권회수를 위한 콜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5년이 넘게 했던 이 일은 내가 갑이지만 고객들은 본인들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욕 혹은 반말 등등 매 콜마다 듣게 되니 나에게 상처를 주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실업급여를 타면서 잠시 쉬기로 했고, (계약직이기에 실업급여를 탈 수밖에 없는 구조임) 난 다시 여유를 갖으며 재취업까지 자유로워졌다.
매번은 아니었지만 계약기간이 끝나 실업급여를 타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너무 좋았다. 이 시기의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60세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지만 다른 방향으로도 대비를 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2개의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도 이 전처럼 스트레스가 해소되지는 않았고, 점점 성격도 바뀌는 것 같아 불안해지기도 했다. 이 불안감은 잠시라도 ‘아예 다른 일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고, 어느새 지하상가 옷가게를 여동생과 함께 운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느끼게 된 ‘대면과 비대면’의 장단점은 차이는 컸고, 큰 깨달음으로 ‘난 비대면이 잘 맞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나의 머릿속에는 ‘아무래도 가게운영하는 것보다 회사원이 잘 맞다’고 끝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새로운 전산과 이전과는 다른 소속의 첫인사를 하며 또 다른 인센티브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때는 추천 입사로 집에서 10분 거리의 회사를 추천받아 입사하게 되어 근무하게 됐다. '전산도 아주 간단하고, 스크립트(상담필수멘트)도 짧아서 좋지만 영업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힘든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단점은 스트레스에 끼지도 못하기에 매일 편하게 출근해서 착석하게 됐고, 1개라도 성공하려고 애를 썼다.
다시 텔레마케터로써의 업무를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최대 스트레스가 재택근무였을 때' 있었다. (보안서약서가 존재하는 세상이기에 이렇게 표현해서 쓰기로 했다) 000 회사는 최근까지도 앱이 없어 홈페이지에서 주문을 해야 했고, 그러던 어느 날부터 택배회사의 파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달 가까운 파업의 여파로 상담사들은 고객들의 욕받이가 되어야 했고, 난 그날 받은 전체 콜이 욕과 불만이 기본이라 스트레스가 폭발하고 말았다.
콜 대기량이 증가되고 있는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난 상급자에게 아파도 병원을 토요일에 가라는 말이 자극이 됐다. 오전 내내 참다가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클레임의 원천봉쇄를 하도록 업무처리는 변경되지 않고, 자리에 있어야 할 회사가 너무 싫었다. 난 이대로 2개월 동안 욕받이를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된다는 생각만 해도 괴로웠다.
그래서 매번 난 2년이 다가오면
그 시점부터 퇴사 뒤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바로 퇴사승인을 해 주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계속 말을 하면 ‘성대결절’이 다시 올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래서 이직도 당분간 힘들다 보니 회사에서 제안 한 긴 휴가를 갖으며 목을 쉬게 했다. 다행히 스트레스 또한 조금은 해소된 이후 복귀를 하게 됐다. 하지만 다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건 정말 종류별로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있다’는 걸 또 감수하기로 한 거다. 나의 글은 이렇게 스트레스에 예민 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어느새 현재의 클레임들은 아예 보상을 요구하거나 소보원에 고발한다고 하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고객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싫었던 건 아주 긴 시간 동안의 통화로 다음 고객을 대기하게 만들며 상담사들을 아주 점잖은 말투로 괴롭히는 나쁜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난 소소할지 몰라도 나만의 새로운 해소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며 일을 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고객에게 친절은 기본인 상태로 정보를 줄 순 있었다. 이후 동의 혹은 전달하고자 함에 있어 고맙다고 한마디 해 주는 고객들을 만나게 되면 미소 지을 수 있기에 난 오늘도 소소한 행복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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