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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Mar 27. 2019

닭의 변신

유년의 기억


내가 짱돌만한 손을 모아 막둥이 외삼촌의 똥집을 찌르기 시작할 무렵 동네에는 슈퍼가 셋, 초록 대문이 셋, 파란 대문 둘, 갈색 대문 넷, 은색 대문이 하나, 황토색 쪽문 다섯, 전봇대가 둘, 동네 바보 하나가 있었다.  옥상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일곱 개 씩 다섯 층 그러니까 서른다섯, 저녁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바라보던 북두칠성의 별은 이상하게도 여섯, 우 리 가족은 넷이었다.   


그 시절 엄마는 동네에 테이크아웃 치킨집을 차렸다. 친척 언니가 가게 문에 형광 주황색 도화지로 「닭」이라는 글자를 오려 붙였다. 가게 문의 절반을 덮은 형광의「 닭」. 나는 그것이 참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 뜨거웠다. 


그즈음 한낮부터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리어카에 ‘설탕 빠나나’를 싣고 돌아다니는 과일 장수 아저씨와 매일 다른 놀이를 찾아내는 우리들 그리고 거지 처녀 한 명으로 추려진다. 아이들은 동물 흉내를 잘 내는 과일 장수 아저씨가 나타나면 와아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고 거지 처녀가 나타나면 와아 소리 를 지르며 도망갔다. 때로 짓궂은 아이들 몇 명은 거지 처녀를 놀리다가 거지 처녀가 쫓아오는 시늉을 하면 웃으며 내뺐다. 종종 그 무리에 섞여있던 나는 거지 처녀가 쫓아올 때마다 정색을 하고 달려 엄마의 닭집 문을 열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엄마는 늘 커다란 통나무 모양의 도마를 사용했다. 거기에 생닭을 올려놓고 닭의 다리며 날개를 퍽퍽 자를 때 엄마의 칼질에는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사람들은 엄마의 닭이 깨끗해서 좋다고 말했다. 밀가루가 날리는 좁은 닭집에는 닭과 기름 냄새가 끊이질 않았고 손님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나로 말하자면 튀김가루와 계란 옷을 입은 닭이 기름에 튀겨지는 첫 순간을 보는 게 좋았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기도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희끄무레했던 생닭이 황금빛 기름 속에 들어가는 순간, 조용하다 못해 적막해 보였던 기름은 사납게 돌변해서 사정없이 닭을 튀겨댔다.   

파르르 혹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그 지옥 같은 기 름에서 부활한 닭은 더 이상 예전의 닭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치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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