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것과 걱정
비타500이 깨져왔다. 일터에 도착해보니 비타500이 박스를 깨지지 않으려고 더 포장한 휴지곽만한 상자가 젖어 있었고 상자 위엔 ‘배송 중 파손되어 죄송하다’는 메모와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짜증이 났다. 깨진 것은 크게 개의치 않은데 박스에 흡수되지 못한 비타500의 끈적한 액체가 다른 음료와 바닦에 묻어있었다. 음료 액체는 이미 굳어 찐덕 거려 음료가 묻는 곳을 만지고 밝을 때마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이 말해주는 것은 파손 음료의 뒤처리를 해야한다는 사실. 아침부터 무지하게 번거롭게 되었다. 일이 하나 늘었다.
음료를 깨뜨린 사람은 배송기사인데, 뒷처리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분한 마음이 요동친다
끈적한 음료가 묻은 음료를 물티슈로 닦고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는다. 잔여 끈적임을 없애기 위해 물티슈로 또 닦는다.
바닥에 묻는 음료의 냄새 분자가 대기 중에 퍼지며 달콤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기분은 전혀 달콤하지 않다.
그렇게 흘러내린 내용물을 깨끗이 제거하고 주범인 비타500이 깨진 채 들어있는 상자를 싱크대로 가져가 커터칼로 개봉한다. 10개 중 3개 멀쩡해보인다. 파손에서 살아남은 병들을 한쪽으로 옮기고 조심스레 박스를 으깨고 접고 접어 깨진 병의 파편이 새어나오지 않게 한다.
파손되지 않은 병들의 내용물은 멀쩡해보인다. 그러나 라벨지가 젖어있다. 병 표면에 묻은 깨진 파편을 씻겨내기 위해 흐르는 물에 병을 씻으니 라벨지가 군데군데 찢겨나간다.
그냥 진열하려고 하니 마음에 걸린다.
"내가 직원이라도 이 병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마시지 않을 것 같은데"
결국 나는 파손되지 않은 병들의 라벨을 깨끗하게 떼어낸다. 온수로 씻으며 살살 벗겨낸다. 이제 비탕500은 무라벨 제품이 되었다.
일련의 청소를 끝내고 나니 다시 분이 난다. 파손된 음료 내용물로 바닥이 뻔히 찐덕이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두고간 배송기사가 원망스럽다. 무책임하다고 언성을 높이고 싶지만 소심한 나는 그러지 못한다. 기껏 전화해서 웃으며 나의 고충을 하소연할 뿐이다. 최대한 정중하게
"앞으로는 꼭 조심해주세요"
당부할 뿐이다.
물론 배송기사님도 죄송하다고 연신 대답한다.
전화를 끝은 뒤 후회가 밀려든다.
"괜히 항의 전화를 했나.
아니다 할말은 해야 더 조심할 것 아닌가 무책임한 행동으로 애궂은 나만 일도 시작 못하고 청소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나 그냥 두고간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그래도 본인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
괜한 나를 괴롭힌다. 그냥 한쪽 마음만 존재하면 편할텐데.
악인이 되는 선인이 되든 하나만 하자. 어정쩡하게 선인처럼 보이려하니 이도저도 아닌 호구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