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레드에서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들이 보여서 13년 차 타투이스트로써 이 직업이 나에게 준 수많은 이점 중 한 가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해외에서 일을 해본 타투이스트들이라면 모두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손님들에게 나를 신뢰해 주는 말을 듣는 것.
“난 널 믿어, 너의 선택을 믿어, 네 생각에 그게 맞다면 그렇게 해줘, 너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
아니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귀한 당신 몸과 평생 함께할 타투를 나에게 받기로 결정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무한한 신뢰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내게 건넨 신뢰는 나의 타투에 관련한 능력을 믿는다는 것 일 것이다.
살며 칭찬은 많이 들어봤어도 나를 믿는다는, 신뢰의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선 처음엔 많이 낯설었다.
그렇기에 처음엔 받은 신뢰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최선을 다했다.
후엔 그 무한한 신뢰에 대한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 후엔 내가 받은 과분한 신뢰에 대한 감사함에 그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
이때 내가 최선을 다 할 수 있던 건 작업뿐이었다.
‘더 좋은 디자인을 줘야지, 더 퀄리티 높게 작업을 완성해야지’
이후엔 이것조차 내가 받은 신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멋진 타투를 주고 싶었으나 이건 다른 타투의 비교 대상에 따라 달라지며,
가장 뛰어난 타투를 주고 싶었으나 이건 ‘잘한 문신’의 기준에 따라 달려지며,
가장 완벽한 디자인을 주고 싶었으나 이 또한 받는 사람이 원하는 사항이나 크기나 부위적 한계등으로 인해 내 기준의 만족도가 달라지기에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럼 나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가장 멋지게 만들어서 그걸 주면 되려나?’
이것 또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날 것이기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미래의 내가 실력이 더 뛰어나져도
과거에 내가 완성한 타투는 변하지 않기에.
그래서 난 나의 고객들을 위해 그들의 자랑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미 완성된 타투는 성장할 수 없지만 나는 성장할 수 있으니까.
타투의 디자인이나 퀄리티에 관계없이
나에게 타투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최고의 선택인 것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그렇다고 타투를 소홀히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매일 현재의 나는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최고를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고객들을 위한 타투를 줄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자랑이 될 수 있도록 성장해 나가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간 염치없게도 이렇게나 감사한 내 고객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전한 적이 없었다.
이 기회에 내 마음을 전해본다.
To. 나의 소중한 고객인 당신께
당신이 제게 준 신뢰와 사랑을 먹고 저는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제게 주신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기에 당신을 위해 더 예쁘게 자라겠습니다.
언젠가 꽤나 괜찮은 저를 보고
“저 아이 내 사랑 먹고 컸는데, 잘 컸네”
라며 당신이 만들어낸 저라는 작품을 음미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뿌듯한 날을 당신에게 드리기 위해.
언젠가 꽤나 잘 큰 저를 본다면 제 안에 당신의 영향이 있었음을 기억해 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From. 당신의 아티스트
나는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분노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 보면 분노로 이뤄낸 것들은 내 인정욕구까지 성장시켰었다.
나를 건강하게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킨 건 오직 감동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준 이해와 배려, 존중, 친절, 사랑들로 받은 감동만이
스스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변화를 만들었다.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스레드 글을 보며
내가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장점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이걸 말해야겠다 떠오른 걸 보며
내가 13년간 이 직업에 종사하며 가장 좋았던 건 이거였구나를 알았다.
다시 한번 더 저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