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어른되는 중

by Snowfield

해외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친구들을 가끔 일이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나게 된다.

사람을 일이 년에 한 번 만난다는 게 아니라,

한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기까지 일이 년의 시간이 걸리는 나다.


내 주변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난 연락을 먼저 하지도, 잘 받지도 않는다.

이런 날 알아서인지 내 주변사람들도 나에게 연락 한번 없고(ㅎ…쓸쓸하군)

하지만 몇 년에 한 번 보더라도 내가 그 나라에 갔을 때 연락을 하면

모두가 기꺼이 시간을 내 나와 만나준다.(사랑한다)



난 이관계가 좋다.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덕에 업데이트되지 않은 그간의 일들과 변화들.

덕분에 상대의 외적인 변화만이 아닌, 내적인 변화까지 기민하게 알아볼 수 있다.


언제쯤부터일까

통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친구들까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은 건가 생각하기엔 내 친구의 범주가 2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까지니 나이영향은 아닐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올해부터이다.

작년 한 해 캐나다와 유럽, 아시아투어를 돌고 다시 캐나다에 돌아와서 만난 친구들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있었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돈부터 벌거라며 미국으로 이사를 계획하던 친구는 취미로 도끼 던지기를 하다못해 리그를 나가고 무기와 총기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 산으로 이사를 간다 했으며,

젊을 때 가정을 책임지느라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한 게 한이라던 친구는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라고 외치더니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안정적인 가정과 행복한 순간들이라고 외쳤으며,

책에서 배울 것이 없다던 친구는 매일같이 책을 읽다 못해 매일같이 글까지 쓰기 시작했으며,

소소하고 평범한 것이 좋다던 친구는 자아실현을 하려고 자신의 것을 창작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며,

마음의 안정을 외부가 아닌 자신 안에서 발견한 친구,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 친구, 개인의 성공이 아닌 성공적인 가정을 만들고자 그런 가장이 되려고 노력하는 친구, 술을 끊고 자기계발을 시작한 친구,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 엄마가 된 친구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모두가 다 변화하고 있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이 많은 변화를 이루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인가?

내 주위의 사람들만 이런 변화를 겪는 걸까?

난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지금의 사회가 세상과 인생, 자신 안에서 모순을 찾아내고 본질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느낀다.


이전에도 다들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었지만, 올해만큼 이렇게 급격하고도 빠른 변화를 보인적은 없었기에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감탄하듯 보내고 있다.


오늘은 그중 엄마가 된 친구와 만나고 왔다.

물론 조카님까지.





다시 만나기 전에도 나에게 이 친구는 이미 너무나도 멋진 친구였다.

자신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선 기꺼이 감사히 희생할 줄 알고,

타인을 위해선 본인의 슬픔과 고통을 숨길 줄 알고,

타인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으로 느낄 줄 아는 사람.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그만큼 강하고 선하며, 책임감과 사랑이 넘치는 사람.

그런 친구였다.



작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임신 초기였다.

심한 입덧으로 아무것도 못 먹는 주제에 내 걱정이나 하고,

힘든 내색 한 번을 안 하고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웃더라.



그날 친구가 말했다.

“난 빵이 낳을 때 풀메이크업하고 힙하게! 멋지게!

원, 투, 쓰리, 빵! 하고 허세 가득하게 그렇게 낳을 거예요.

그래서 한방에 빵! 나오라고 태명도 빵이에요.”

출산의 고통이 두렵지도 않은가, 웃으면서 제 말대로 허세 떨며 말했다.

참 강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임신 중 엄마가 되어서 자신이 포기해야 할 것과,

앞으로 다가올 날을 걱정하던 모습을 보이던 것보단 멋져서 강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 친구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 가족도 없는 해외에서 혼자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남편은 있다.)

한국의 의료와 산후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할 만큼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에선 아이를 출산하면 시리얼을 먹이고 집으로 보낸다는 글을 보았는데 이게 사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첫 아이에, 영어도 못하고, 언어적 소통이 되지 않는 의사인 데다가, 한국만 한 진통제도, 한국만 한 의료 서비스도, 산후조리도 없고, 아이를 함께 돌보아줄 가족도 없는 환경에서 이제 스물몇 살 된 아이가 아이를 낳겠다니.

‘넌 정말 강하다’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만나지 못한 사이에 출산을 한 이 친구는 정말 말했던 것과 같이 풀메이크업을 하고 출산을 했으며,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물론 여러 원인이 있다.

환경적으로 너무도 예상되었던 산후우울증과 여러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처음 되어보는 엄마, 처음 해보는 육아, 달라진 라이프 스타일, 커리어의 단절,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그간의 일들과 힘듦을 늘어놓는데 이 친구가 너무 착해서 화가 다 났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중간중간 이 환경과 가정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 모습에 속상했고,

누구 하나 주변에 힘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사람들에게 감사한 기억만으로 살아가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받았었는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 빼먹지 않고 말하는 모습에 속상했고,

그렇게 몸도 마음도 고생하면서도 남편과 아이와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족해서 얼마나 미안한지에 대해 말하는 모습에 속상했고,

이런 날만큼은 속상함과 고민을 말해도 괜찮은데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눈치를 보며 말하는 모습에 속상했다.



무엇보다 너무 속상해서 화가 낫던 부분은

이 모든 말들을 들어보니 결국 이 친구가 힘든 이유는 자신이 부족하고 쓸모없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아이만 봐야 하다 보니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서,

이러다 보니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서.

끝까지 다른 사람만을 생각해서 도움이 되고 싶어서 우울증에 걸린다는 게 너무 속상해서 화가 났다.


특정한 대상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지 않는 나로선 정말 경이로울 정도의 헌신이다.


“넌 참 사랑이 많다. 가족을 각별하고, 너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너의 행복이 될 만큼 강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난 너만큼 가족에게 애착을 갖고 헌신을 할 수 없다.

이 말은 이건 네가 가진 너만의 강점이자 재능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재능이라는 걸 특정 기술적 영역으로만 바라봐서 대체로 자신이 가진 재능을 모른다.

기술적 영역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능은 타고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에겐 그 재능이 너무 당연해서 그게 특별한 능력인지를 모른다.

네가 가진 가족을 너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인 재능을 이용해서

네가 너와 너의 가정, 너의 가족들을 위해서 하는 것들을 너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면 너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걸 너의 직업으로 삼아 계속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해서 너의 가족에게 도움을 주고,

그 과정들과 네가 배운 것들을 활용해서 너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준다면 어떨까.

네가 돈을 벌어서 집에 가져다주는 걸로 쓰임이 되지 말고, 가족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걸로 쓰임이 돼 보자”



이 착한 친구는 이 말을 듣자마자 내내 불안하듯 떨리던 것과는 다르게 안정을 찾고,

내일 내가 있는 곳에 와서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에너지를 받아,

옆에서 자신은 그 일을 당장 시작해 보겠다며

예전과 같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강한 친구로 돌아왔다.


타인에게 도움이 될 생각만 해도 이렇게나 힘이 넘쳐지는 친구라니.

난 참 친구복이 많다.




내 계획은 저녁식사를 하고 11시 정도에나 집에 와서 나머지 업무를 끝내려던 거였는데

1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바로 자야지 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잠옷이 없다.

맞다. 난 오늘 내가 일찍 올 줄 알고 집에 와서 빨래를 하겠다는

메타인지 박살 난 계획으로 잠옷과 침구를 세탁기에 넣어뒀다.

역시 처맞기 전까진 모른다.


덕분에 밀리지 않고 일기를 쓴다.

3시네. 건조기 다 돌아가면 5시 되려나.


내일 아침 운동은 물 건너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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