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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tyi Knony Feb 21. 2018

드디어 치과의사가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앞둔 나에게 보내는 다짐



2018년 1월 31일. 아침부터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심장에서 시작된 듯한 묵직한 무엇인가가 기도를 타고 올라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오후쯤에 나올 치과의사 국가시험 합격자 발표를 불안하게 기다렸던 이유는 내가 시험을 잘 치르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정답을 고른 문제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불합격하고 가지게 될 좌절감과 막연함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는데 왠지 현실이 될 것 같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오후 4시 정도에 합격여부가 문자메시지로 발송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막상 4시가 넘었지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불합격’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을 때 닥쳐올 파괴적인 감정들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미처 되지 않았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문자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내내 가슴속에 상주했던 무거운 느낌이 ‘합격’ 글자를 보고 난 후 얼굴로 이동하여 눈물로 변하는 듯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통화하면서 나의 합격을 염원했던 주위의 분들께 합격 소식을 전했다.    



 

5년 전, 치의학전문대학원(치과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내가 치과의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입학시험을 치르고 면접시험을 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운이 좋게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입학하여 간절하게 원했던 치의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입학 후의 과정도 험난했다. 하루에 4개 과목 시험을 치른 후 온몸의 기운이 빠졌던 기억이 난다. 실습 환자를 구하지 못해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숱한 고비들을 넘길 수 있었다.     


입학 동기들을 끝까지 챙기려고 노력한 학생 총 대표단 구성원의 희생을 참 고맙게 생각한다. 기공 실습 과제물을 자신의 것처럼 최선을 다해 도와준 일부 동기들의 마음 씀씀이도 정말 감동이었다. 처음 기구를 잡아 서툰 솜씨로 치료를 하는 나를 이해해주시고 오히려 격려까지 해주셨던 김 OO 님, 병원에서 먼 지역에서 거주하심에도 불구하고 저의 졸업을 위해 수고스러운 발걸음을 기꺼이 해주셨던 최 OO 님, 황 OO 님, 김 OO 님, 신 OO 님, 홍 OO 님, 김 OO 님, 권 OO 님에게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치과의사 국가시험 합격을 확인한지도 벌써 2주일이 지났다. 지쳤던 심신을 달래면서,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취업활동도 했고 3월 초부터 일할 근무지도 결정했다. 졸업 날도 다가오게 되니 자연스레 전문 직업인으로의 초심을 정립하기 위해 많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직 실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지만, 학업과 병원 실습을 통해 간접 경험한 치과의사의 직업 측면 가치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전문 기술과 솜씨를 바탕으로 환자가 가진 구강 내 불편함을 직접 해결하거나 축소시킬 수 있는 점이 좋다.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건강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업무에 대한 보람과 사명감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여겨왔다. 치과치료는 구강 기능성 향상과 함께 심미 증진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환자와의 충분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의학 지식과 기술, 예술성, 인문학에 정통한다면 많은 사람들과 밝은 관계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성실하게 환자를 상대하다 보면 덤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의 부와 명예도 축적할 수 있으니 이만한 직업은 없는 듯하다. 치과의사로서의 삶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아무나 획득할 수 없는 이로운 가치들을 공짜로 얻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각종 술기에 능숙해지기까지 부지런히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내가 치료한 환자의 예후를 걱정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이다. 그래도 획득할 수 있는 기대 가치가 큼을 알고 있기에 통과의례와 같이 수반될 고통이 두렵지는 않다. 적극적으로 부딪힐 각오를 하고 있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많은 여정을 거치면서 다수의 실패와 어려움을 경험했다. 쏟아부은 노력과 열정을 수치로 치환하여 분석해 본다면 내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혹은 스펙)는 참 보잘것이 없다. 비효율적인 삶이었다. 내게만 유달리 가혹한 운명이 주어졌다고 한탄하며 지난 10년을 버텼다. 하늘 탓을 하는 핑계 같은 위로만이 초라해서 슬프기까지 한 노력의 결과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쓰러지는 멘탈을 부여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 이 순간,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작용한 보이지 않는 손이 과감한 선택과 결정, 각종 시험에서의 합격을 만들어냈다. 고비가 있을 때에는 당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자연스럽게 흡수된 행운적인 요소가 나를 도와주고 이끌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합격 소회에 겸손이 지나치게 묻어있다고 말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비록 수는 적지만 굵직굵직한 행운들을 준비해 놓았던 내 운명에 참 감사하다. 




치과계 현실이 어렵다고들 한다. 한 건물에 2개 이상의 치과의원이 있는 경우도 종종 목격될 정도로 개원가 시장은 이미 포화되어 있다.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졌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양심 치과’라는 단어가 특별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많은 환자들은 치과의사를 믿지 못한다. 과잉치료를 경계하며 다수의 치과를 돌아다니는 환자도 적지 않다. 만만치 않은 눈앞의 현실이 막막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빡빡한 현실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려고 한다. 내게 운이 없었다면 가치 있는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리 까다로운 환자더라도 밝은 인상과 적극적인 자세로 상대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행여나 과잉진단의 욕구가 나를 흔들리게 하는 상황이 올지라도 양심을 버리지 않게 나를 붙잡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감사함’을 초심으로 정했다. 초심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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