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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Jun 18. 2021

윤종신, 자이언티, 그리고 조직문화

종신이 형이 알려준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의 비밀



윤종신의 음악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고, 

윤종신의 가사에 삶에 대한 태도와 시선을 배우기도 했고, 

윤종신의 행보에 늘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의 노래 중 '야경'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와 윤종신의 아련한 허밍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듣노라면 느지막이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에 남산 공원에서 느꼈던 나른함과 대학로 낙산공원에서 어렴풋이 맡았던 풀냄새 섞인 여름 향기의 기억이 떠오른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들어온 윤종신의 목소리는 세월을 담아내며 녹음이 짙어지듯 더욱더 선명해지고 선명해져 그가 직접 써 내려간 가사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찰떡같이 어울린다. 


'야경'의 가사는 이렇다. 



다 올라왔어 한눈에 들어온

나의 도시가 아름답구나

방금 전까지 날 괴롭히던

그 미로 같던 두통 같던 그곳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저기 어디쯤인가 아직 거기 살고 있니

모두들 안녕히 잘 계신지

이렇게 넓은 세상에 우리 만난 건

그것만으로도 소중해

여기서 보니 내가 겪은 일

아주 조그만 일 일 뿐이야

수많은 불빛 그 속에 모두

사랑하고 미워하고 실망하고

그중에 내 것도 하나


저기 어디쯤인가 우리 이별했던 곳

유난히 택시 안 잡히던 날

택시 뒷창으로 보인 마지막 모습

멀어질 때까지 바라본


모두 변했겠지 내가 변한 것만큼

그래도 간직하고 있어

너의 그 미소가 나를 향할 때 느꼈던

그 포근했던 그 머물 것 같았던


여기 어디쯤인가 우리 자주 만난 곳

많은 약속이 오고 갔던 곳

마치 너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왜 잊지 못하냐고 묻네


우리 언제쯤인가 마주칠 수 있겠지

저 불빛 속을 거닐다 보면

먼저 알아본 사람 나였으면 해

난 언제나 바라봤기에

언제나



지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이 노래의 화자는 실은 윤종신이 가사를 쓴 '이별택시'라는 노래의 화자와 동일한 사람이다. 


연인과 헤어진 직후, 급하게 택시를 잡고 떠나는 찰나의 모습을 그리며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 '이별택시'라는 노래에서, 화자는 택시 안에서 청승맞게 울며 달리면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을 잊을 수 있을까 싶어 당장 택시에서 내려 빗속을 달릴까라며 비애(悲哀) 속에 잠겨 있다. 



달리면, 사람을 잊나요 빗속을. 

지금 내려버리면, 갈 길이 멀겠죠. 아득히.

달리면 아무도 모를 거야.

우는지 미친 사람인지...

- 이별 택시 가사 中



수년이 지난 후,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여전히 간직한 화자이지만 조금 더 성숙해진 그는 조금 더 담담하게 연인을 추억한다. 


땅거미가 저물어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빌딩과 곳곳의 집들에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저녁, 도시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높은 곳 -  서울로 치면 남산쯤 되는 공간 -에 올라온 화자는 연인과의 추억이 있는 장소를 짚어보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그 기억 속 장소에는 오래전 연인과 헤어지면서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던 곳이 있다. 택시를 타고 연인보다 먼저 떠나가면서 '택시 뒤창을 적신 빗물 사이로' 바라본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화자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발표한 노래이지만 가사 안의 화자가 동일한 사람으로 상황과 맥락을 이어가며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두 노래.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이별택시'라는 노래를 사랑했던 팬들이라면 '야경'이라는 노래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노래 속 화자의 상황과 감정에 더 몰입되면서 가사와 해석에 주목하게 되고 더불어 실제 노래를 하는 뮤지션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윤종신의 종전의 히트곡  '좋니'와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한 민서의 '좋아'로도 이어진다. 단언컨대 윤종신의 '좋니'에서 다룬 이야기의 Context가 없었다면 민서의 '좋아'가 주는 특별한 감동과 정서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두 작품의 스토리를 연결하여 동일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기획 방식은 비단 같은 카테고리 안의 작품 - 이를테면 노래와 노래의 연결  -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이종 카테고리 간의 작품끼리에도 적용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자이언티(Zion. T)의 '눈'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영화 '소공녀'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소공녀'를 보고 자이언티의 '눈' 뮤직비디오를 접한 팬들과 소공녀를 접하지 않고 뮤직비디오를 접한 팬들 간의 콘텐츠 수용성과 반응, 정서적 변화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 안에서 문화를 다루는 일은 서로 다른 구조와 모양을 가진 요소들을 동일한 맥락(context)의 스토리로 연결해나가는 일이다. 


사람들의 생각의 범위가 교육 과정이나 워크숍 안에서만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을 맥락 안에 놓아두고, 맥락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해야한다. 항상 맥락 안에서 그다음을 구상해야 한다. 


교육에서 다룬 action item이 이다음 더 세부적인 agenda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하고, 이후에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들은 습관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점검해나가야 한다. 온라인이던 오프라인이던 학습 장면에서 받은 메시지가 의사결정과 리더십 장면에서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 맥락 안에서 중요한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은 자연스레 반복되기 마련이다. 


개인과 조직의 결정과 행동, 그 영향력은 늘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데, 사람들이 일상에서 주고받는 대화에 의도한 스토리가 자연스레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면 절반 이상의 성공이다. 


맥락을 설계하는 관점에서 훌륭한 기획은 스토리가 어디에서부터 흘러 들어온 것이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 직접 만들었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것이니까. 


사람은 일상을 살아가다가 변화가 필요한 특정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이전에 어디선가 축적되어 있는 경험과 정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지금까지 와는 다른 정서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본인의 내면 어딘가에 흩어져 있는 경험의 정보가 특정한 맥락(Context) 안에서 재구성되고 선택되는 것이다.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수년 전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화자가 (야경) 실은 예전에 이별 택시 안에서 처연한 모습을 보인 화자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별택시) 노래는 더욱 특별해지고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뜬금없이 비싼 호텔에 들어가 빈 방에서 마네킹과 춤을 추는 남자가 (자이언티, '눈' 뮤직비디오) 실은 과거 연인과의 약속을 여전히 기억하며 차마 이뤄주지 못한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순정남임을 깨달았을 때 (영화, 소공녀) 영상을 보는 팬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작품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맥락의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동과 정서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로부터 스토리가 회자되며 재구성되고 편집된다. 



그래서 사실, 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은 '이야기 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종신도 자이언티도,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감독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짧게는 4분 이내의 노랫말부터 길게는 2시간 정도 되는 영화 시나리오로 말이다. 


그런데, 조직문화는 이보다 좀 더 많이 길다. 


일주일이나 한 달이 아니라 수년을 걸쳐 장기간의 맥락과 스토리를 쌓아나가야 하고, 잘못하면 그 사이에 공들여 쌓아온 스토리가 다른 곳으로 새거나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실력 있는 이야기 꾼들에게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아니, '꾸준함이 곧 실력'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윤종신이 수년간 매달 하나의 곡을 내온 것처럼, 꾸준한 창작으로 팬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윤종신의 인터뷰 中 (BBC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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