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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Jan 02. 2022

다국적 기업 조직문화 담당자의 회고

feat. 우리 회사 복지 자랑

작년,(아니 이제 재작년 이군요) 4월에 입사했으니, 현재 회사에서 일을 한 지 이제 스무 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아무래도 B2B 기업이니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B2C 회사보다 당연히 생소하게 느껴질 겁니다. 게다가 헬스케어, 그중에서도 병원을 상대로 하는 의료기기 회사이다 보니 같은 헬스케어 업계에 있는 제약 회사에 비해 일반인들에게는 더욱 회사명이 낯설지요. 하지만 이쪽 세계(헬스케어)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희 회사는 나름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고 있는 업계 Leading 그룹입니다. Company/Job 리뷰 사이트인 Glassdoor에서  검색해 보면 '헬스케어 업계의 구글'이라는 표현도 발견되고요. 


테헤란로, 우리 회사 사무실에서 보이는 뷰



어느 조직에 'OOO의 구글'이라는 표현이 붙으면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업계의 문제 해결을 위한 치열한 고민, 효과적인 협업을 해 나가는 멋진 동료 등을 떠올리기보다는)  '훌륭한 복지'를 먼저 떠올리시는 것 같습니다. 



네, 저희 회사 복지 정말 좋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배달의민족 서비스를 하고 있는 '우아한 형제'들이 최근에, 내년부터 주 3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발표를 했죠.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많이 주목받기도 했고, 많은 직장인 분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데요.  저회 회사는 주 32시간 근무제를 한지가 좀 됐습니다. 'Performance Based Welfare'로 분기별로 성과에 따라 유연한 복지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저희는 2020년 9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 근무(9시-12시 퇴근)만 시행하는 APAC의 첫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분기 성과 달성에 따라 1월부터는 월-목 7시간 근무로 결정되었죠. 그래서 2020년 9월부터는 주 35시간 근무, 2021년 1월부터는 32시간 근무제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 진행된 타운홀에서는 또다시 올해 1월부터 수요일은 오후 4시 퇴근으로 결정되어 주 31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게 되었고, 향후에 주 4일 근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근무 시간에 대한 가이드를 모든 구성원에게 전달하지만, 자신의 직무 특성에 따라 본인의 매니저와 협의하여 On-site(매일 사무실 출근) / Flex (주 2회 재택) / Remote (필요한 경우에만 사무실 출근) 중 근무 형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말씀드렸듯이 이 모든 것은 모두 '성과 기반의 benefit'입니다. 다국적 기업인 저희 회사에서 한국은 현재, 16분기 연속 분기별 목표 달성을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해 나가고 있고 이로 인해 leadership 팀으로부터 훌륭한  benetfit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토스 서비스를 하고 있는 '비바리퍼블리카'가 크리스마스 전후에 약 10일간 전 직원에 휴무를 주는 겨울 방학을 시행해서 이슈가 됐었는데요. 매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휴무는 저희 회사에서 꽤 흔한 일입니다.  재작년(2020) 12월에는 저희 모든 구성원이 약 3주간의 방학 기간을 가졌고, 영업직 등 이 기간에 쉬지 못한 구성원은 이후에 매니저와 협의하여 대체 휴무를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이번 주 저희 회사는 전사적으로 일주일간 refresh 휴가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 달 1월 Family Care Leave (가족 돌봄 휴가)로 한 달간 더 쉼의 기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자녀의 양육이나 가족의 질병이나 재난 시에 사용할 수 있는 Family Care Leave를 저희 회사에서는 2년 단위로 최대 6주까지(기간을 나누어서 사용도 가능) 유급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재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케어하기 위해 휴가를 사용했고, 감사하게도 한 달의 시간 동안 아버지를 돌보며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역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추석이나 설 명절 전휴로 연차 외 Special Leave (특별 휴가)가 제공되고,  5일 연속 휴가를 사용하면 기프트 카드나 pay 포인트를 제공하여 연차 사용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훌륭한 아침 조식, 인터컨티넨탈 호텔/김영모 베이커리 등에서 제공되는 베이커리,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 점심 도시락 등 이 모든 것이 매일 무료 제공되고, 본인의 직무와 연결되는 학위과정(석사/박사)을 어느 학교든 상관없이 매니저의 승인에 따라 지원해 주는 본인 학자금 지원 제도, 주택 자금 대출 이자 지원,  자녀 학자금 지원, 본인 모바일(핸드폰) 사용 비 지원 등 그 외 셀 수 없이 많은 benetfit 이 있습니다. 물론 많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카페테리아 식 복지 포인트 제도나 단체 의료 보험, 가족 동반 건강 검진 혜택도 있고요. 이렇게 훌륭한 복지 덕분에 저희 회사는 블라인드에서 재직자들이 선정한 행복한 기업에 전체 9000여 개의 기업 중  4위 (복지 1위),  2019, 2020 2년 연속 일하기 좋은 기업 '신뢰 경영 대상'에 선정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와, 정말 부럽다', '그 회사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거냐' 하시며 많은 부러움과 관심을 표현합니다. 특히 저와 같이 조직 안에서 교육이나 조직문화, 혹은 HR을 담당하고 계시는 분들은 구체적으로 제도의 운영 방식을 물어보시며 자신의 조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기도 하시죠. 소위 '벤치마킹'입니다.  타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나 제도를 알아보고 적용점을 파악해 보려는 시도는 '일하기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건강한 움직임이죠. 낯선 여행을 떠나기 전, 나보다 먼저 비슷한 여정을 경험한 이가 있다면 그에게서 도움이 될만한 힌트를 얻고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준비를 점검해 보는 것이 여행의 출발이 아닌가 싶습니다. 



훌륭한 복지가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에 좋은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조직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많은 개인과 조직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이러한 복지가 어떠한 철학과 가치에 근거해 나올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복지 제도를 비롯해 조직 내 존재하는 대다수의 제도, 시스템, 프로세스는 문화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누군가는 '제도와 시스템으로 인해 특정한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오히려 문화가 제도와 시스템의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네, 실은 조직 안의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문화는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교류하는 관계지요. 반드시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이라는 선후 관계를 따지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제가 제도, 시스템, 프로세스가 문화의 결과라고 한 이유는 문화를 '지형'으로, 제도와 시스템, 프로세스를 '전략의 도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문화를 전략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이해를 바로잡고 문화를 적어도 전략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 문화를 조금 더 강조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문화와 전략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차치하고, 사실 저희 회사의 복지 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길게 늘어뜨린 이유는 조직이 도대체 어떠한 토양을 가지고 있길래 이와 같은 꽤나 과감한(?) 복지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복리후생과 같은 특정한 제도가 구체적으로 조직문화에 어떻게 결부가 되는지, 제도와 문화가 어떻게 상호 작용을 주고받는지를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동시에 다국적 기업의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지난 스무 개월간 제가 조직에서 일을 하며 겪은 경험과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도 할 겸 말이죠. 




우리 회사에 없는 것과 있는 것 : 품의 제도, 그리고 임파워먼트 


미국이나 유럽에 본사를 둔 대다수의 다국적 기업이 그렇겠지만 저희 회사에는 소위 '품의 제도'가 없습니다. 실무자가 특정한 의사 결정을 받기 위해 '기안'을 올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많은 국내 기업에서 아직도 품의 제도가 공식적인 의사 결정 절차인 경우가 많은데, 품의 제도의 문제는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그중 한 사람만 승인을 하지 않아도 일을 진행시킬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안의  필요와 중요도가 흐려지고, 최상위 의사결정자는 구체적으로 일의 배경과 이슈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의사결정을 하게 되며 여러 사람을 거치는 동안 실무선에서 의도했던 목적과 본질도 상실하게 되죠.  따라서, 조직 내 품의 제도를 없애는 일은  꽤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품의 제도가 없는 조직에서 제대로 일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확실히 작동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임파워먼트', 두 번째는 '리더십'입니다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단순히 '권한위임'으로만 설명하면 그 의미와 구체적인 모습이 제대로 전달되지가 않습니다. 로버트 퀸(Robert. E Quinn)은 임파워먼트를 '기계적 어프로치'와 '유기체적 어프로치'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는데요. 기계적 어프로치는 결정 권한을 적절하게 위임하고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권한위임'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임을 적절하게 구성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죠. 내가 가지고 있던 100 만큼의 권한을 A 구성원에게 20, B 구성원에게 30 정도 나누어주고 내가 50 정도의 권한을 소유하여 책임소재를 분산시킵니다. 권한위임과 책임소재를 적절하게 운용하며 구성원들의 역할을 독려하는 것이죠. 유기체적 어프로치는 단순히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임파워(Empower)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언급하기 힘든 문제를 노출시키고, 작은 성공들을 통해서 신뢰를 축적해나가며, 구성원들의 모험정신과 진취적 정신을 독려하고, 팀워크를 형성해 내는 것이죠. 



스스로 '임파워'된 개인은 네 가지 차원에서 일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먼저, '일의 의미'에 대한 느낌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게 되고, 동시에 '수행 능력'에 대한 느낌으로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업무를 충분히 완수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다음은 '독자적 결정'에 대한 느낌으로 업무 수행 방식을 시시콜콜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다는 느낌이며, 마지막은 '영향력'에 대한 느낌으로 자신이 팀 내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기계적 어프로치 뿐만 아니라 유기체적 어프로치의 방식으로 '임파워'된 개인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차원의 느낌을 가지게 되며 비로소 일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수행해 나갑니다. 이때에 독립적으로 일한다는 말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일을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자율적으로 일한다는 말은 '자신의 원칙에 따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리더십과의 상호교류로 온전히 임파워된 개인은 자신의 생각과 원칙에 따라 일을 수행해도 리더와 방향이 align 됩니다. 



저 역시 크게는 저희 회사의 리더십 팀과 직접적으로는 저의 Direct Manager인 상무님으로부터 많은 부분에서 임파워를 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때로는 그저 상무님께 구두 상으로 보고를 드려 실행합니다. 이를테면 사무용품 구입, 휴가, 외근, 재택근무...  나아가 제 팀원의 보상, 연봉 상승률, 추가적인 직원 채용까지 말이죠. 만일 일의 Budget 이 커서 이해관계에 있는 부서 혹은 담당자에게 내용 전달이 필요하거나 이해관계자가 많은  Impact 가 큰일이라면 메일로 승인 요청을 하고 승인 내용을 캡처하거나 전달하면 됩니다. Comliance 상 필요한 서류나 외부의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문서가 아니고서야 흔히 일상적인 사내 협업 장면에서는 어느 누구도 정해진 양식에 맞춘 서류를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메일로 편하게 매니저에게 승인해달라고 요청하고 승인받은 메일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캡처하여 전달하면 그것으로 끝. 





예전 회사에서 처음 전자 결재가 도입되었을 때, 여전히 조직에서 전자 결재를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서류를 출력하여 승인 절차를 거쳤던 이유는 내 옆에 어느 누구도 전자 결재를 이용하지 않는데 나만 전자 결재로 올렸다가는 아무래도 왠지 상사에게 밉보이고 눈밖에 날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시스템과 제도를 구축해놓는다고 사람은 바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관성을 벗어나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이나 제도와 함께 또 다른 요인이 필요하죠. 조직 안에서 임파워먼트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또 두 가지가 필요한데요. 하나는 '지원과 보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방성'입니다. 



임파워먼트가 실현되기 위한 조건 : 지원과 보호 / 개방성 


몇십 년 동안 수십 장 수백 장의 문서를 일일이 출력하여 결재판 사이에 끼워서 상사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조직에서, 전자 결재를 도입한 직후 누군가가 바로 전자 문서를 올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전자 문서를 받은 상사는 자신에게 전자 문서 도착하였는지, 그리고 그 문서를 확인하려면 어디서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모를 겁니다. 마우스로 전자 문서 페이지를 이것저것 클릭해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밑에 직원에게 출력해서 가지고 오라고 지시할지도 모르죠. 물론,  아예 전자 문서 페이지 접속 자체를 안 하고 있다가 기다리고 있던 문서가 소식이 없자 '왜 지난번에 이야기 한 문서가 안 올라오냐'라며 직원들을 채근할지도 모르고요.   



구성원이 새로 들여온 전자 문서라는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나아가 시스템의 개선과 활용 방안까지 도출하려면 먼저 자신의 상사나 동료들이 해당 이슈를 해결하는 데에  공감하고 있고 그들로부터 자신이 지지받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도 동일한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래, 밀어줄 테니까 네가 한번 이거 잘 파악해서 우리도 알려줘봐'라는 지지와 믿음이 있어야 시스템을 이것저것 뜯어보고 만져볼 수 있죠. 안정된 지원과 보호가 있어야 하나하나 작은 시도를 해보고 일의 원리를 파악하며 지금과는 다른 규칙과 성공 방식을 동료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임파워먼트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지원과 보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주변의 동료와 상사가 믿어주고 지지해 준다고 해도 자기 혼자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일의 속도가 더뎌지고 결국 지속적으로 일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여기에 '개방성'이 필요합니다. 전자 문서 시스템에 들어가 보고 이것저것 기능도 파악해 보고 실제로 문서도 올려보고 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나 혼자였는데,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동료도, 저 건너편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동료도 다 같이 전자 문서로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각자 전자 문서를 사용해 본 경험을 모여서 '개방적으로' 나누는 겁니다. '이런 이런 성격의 업무를 전자 문서로 진행해 봤더니 더 수월하더라', '시스템이 이런 기능을 활용해 봤더니 문서 검색이 더 수월하더라', '문서 리마인드 기능이 있다면 조금 더 편리하겠더라' 이와 같은 의견들을 나누면서 시스템은 고도화되고 업무는 더 수월해지면서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더욱 속도가 붙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결국 전자 문서 시스템은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이때에,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꾼 것은 

전자 문서 시스템일까요? 아니면, 구성원들의 협업과 집단 지성일까요? 


그리고, 

구성원들의 협업과 집단 지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최근의 많은 스타트업은 도전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업무 스타일, 일잘러가 모여 있는 동료, 매우 유연한 근무 제도와 훌륭한 복리후생을 중요한 조직문화의 특성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저는 그러한 특성들은 조직문화의 결과로 나오는 '현상'으로 여깁니다.  조직문화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자의반 타의반 일관성 있게 지켜지고 있는 가치, 왠지 이 집단 안에 들어오면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이기 때문이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상하게 이 집단 안에만 들어오면 'OOO 하게 돼'라는 것이 있다면 그 집단 안에는 특정한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압력이 조직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희 회사 조직문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하나 꼽아본다면, 저는 다름 아닌 '상호 존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즘에 '상호 존중'을 조직 안에서 지켜야 할 약속으로, 중요한 핵심가치로 이야기하는 곳이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반면 수평적 소통, 치열한 토론, 솔직한 피드백을 들어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한 단호함과 용기는 많이 강조됩니다.  '존중'을 강조하면 왠지 모르게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렵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더라도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돌려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서로 간의 '존중'은 '직장 안에서의 예의'라는 표현과 맞물려, 그동안 한국 기업 문화 안에서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던 '위계질서'나 '서열화'를 강화하는 명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계, 그것도 본사가 유럽과 미국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조직문화 키워드가 '상호존중'이라니 좀 이상하게 여겨지시나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아마 어느 누구라도 저희 회사 직원 라운지에 하루 정도 앉아있어 보면 '직원들끼리 굉장히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직원들 서로 간의 인사 표현이나 말투, 억양, 표정, 제스처뿐만 아니라 특히 저희 회사 구성원들끼리 사용하고 있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를 방증하죠. 하지만 이것들이 존중의 문화를 보여주는 진짜 본질은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이 모든 것들도 문화에 따라오는 곁가지들이지요.  




스무 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저의 일을 통해서, 그리고 동료와 구성원, 상사와의 관계를 통해서 느낀 '상호 존중'의 분위기는 '상대방이 그의 역할에서 충분히 임파워(Empower)되어 있는 전문가'라는 가정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사람'이나 '타인을 이용해 자신을 부각시켜 보이려는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러한 시각이 내가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진짜 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신경 쓰며 일하게 되는 것이죠. 



상대방이 충분히 임파워되어 있는 전문가라고 바라보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먼저 내가 말하는 방식이 조금 더 겸손해집니다. 우리가 병원에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때 대체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나요? 나는 나의 질병이나 질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상대방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있으니 그의 생각을 경청하고 의견을 구하는 것이죠. 회사에서 저희 상사나 동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담당 분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충분히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 (지원과 보호),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상대방의 도움을 구하는 태도 (개방성), 이러한 믿음과 태도가 조직 안에 필요한 '존중'입니다. 상대방이 내게 이러한 존중을 보여주니 자신의 업을 허투루 여길 수가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제도를 어떻게 정착시키는가


회사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다양한 benefit을 제공해 줍니다. 어떤 것들은 직원 개인뿐만 아니라 직원의 가족들까지도 혜택이 돌아가지요. 회사에서 복지 프로그램에 투자를 위해 가장 고심하는 것 중의 하나는 직원 abusing (남용) 일 겁니다. 자신만의 이기심으로 정해진 기준 이상의 것을 취하여 타인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기에, 그로 인해 좋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오히려 직원들의 불평과 불만으로 조직문화에 더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기에 형평성과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제도 설계에 고심을 합니다. HR에서 수많은 고심 끝에 제도를 내놓아도 귀신같이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구성원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블라인드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며 서로 간의 갈등과 골이 깊어지면서 조직문화가 되려 얼어붙기도 합니다. 구성원을 성숙한 어른으로 보고 자발적으로 지킬 선은 지키면서 조직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가져가면 좋겠지만 회사는 직원을 쉽게 믿을 수가 없고, 그럴수록 구성원들은 회사가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나 제도가 탐탁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의 과감한 복리후생 프로그램은 직원들에게 보여주는 존중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성원들이 충분히 임파워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생각보다 abusing의 요소가 많은 프로그램도 과감하게 실행합니다. 초기에 몇몇 abusing의 모습들이 발견되고 블라인드에 몇몇 사람들이 익명으로 거론되며, 근로자 위원회에 직원들의 VOC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회사는 프로그램의 배경과 취지, 목적을 다시 한번 직원들에게 리마인드하고 특별한 관리와 통제 없이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담당 부서의 안내와 리더십의 독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암묵적 동의가 맞물려 점차적으로 초기에 보였던 abusing의 모습들이 사라집니다. 만일, 계속적으로 구성원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사항이 발생하면 타운홀 미팅이나 Q&A 세션에 많은 분들의 '공감 버튼'을 통해 메인 agenda로 올라옵니다. 리더십 입장에서 보면 작은 문제일 수 있지만 사소하게 여기지 않고 이 사항에 대한 리더의 생각과 철학, 구성원들의 생각을 고루 들어봅니다. 조직이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지 않는 모습을 통해 점차적으로 프로그램/제도는 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렇게 조직에서 각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지지와 보호, 개방성을 통해 프로그램은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사소한 것이라도 건강하고 성숙한 방향으로 문제를 다루는 장면을 통해 조직 내 각 구성원들도 더욱 임파워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제껏 근무했던 다른 회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중요한 답을 지금의 회사에서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저 책으로 보고 머릿속으로만 이해했던 것들을 경험으로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할까요. 


존중은 그저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일하는 장면에서의 존중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믿어주는 것이라는 것. 


존중하면서도 얼마든지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솔직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아니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솔직한 소통은 '진정한 존중'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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