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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Jul 20. 2022

생명은 자기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틔운다

스타트업 조직문화 자문 미팅 이후의 단상

MYSC의 초대로 스타트업 리더들이 참여하는 독서토론을 진행하였다. 원래는 <그래서, 인터널브랜딩>의 독서 토론 모임이었으나 Q&A로 세션을 진행하다 보니 독서토론이라기보다는 조직문화 '자문 미팅'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초기 비즈니스 조직에서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어 참여해 주신 분들도 나도 모두가 더 만족스러운 세션이 된 것 같다. 


출신도 국적도 다른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면 되는지, 조직 안에서의 자유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성과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여러 이슈로 이미 무기력해진 구성원들을 어떻게 동기부여 시킬 수 있을지, 리더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저 주관적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팀원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등 참가자분들의 현실 고민이 이어졌고 난 그저 각 케이스와 연결되는 이론적 프레임들을 제시하며 참가자분들의 질문과 생각의 확장을 도왔다. 


세미나실에서, 명동성당 뷰


조직개발 업무를 하며 최근에 든 생각 중 하나는, 조직문화를 다루기 어려운 이유가 '우리 인간이 계속해서 인위적인 질서를 원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조직 안에서 여러 규율과 원칙, 제도와 시스템, 프로세스로 의도적인 질서를 세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인 조직에서는 인간의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른 혼란과 무질서가 발견된다. 예컨대,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위해 A라는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하여 다시 이를 해결하기 위해 B와 C라는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어 오히려 이전보다 비용이 증가하고 프로세스가 복잡해지는 경우처럼 말이다. '코브라 효과'는 이처럼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대책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조직은 어차피 예측할 수 없는 혼란과 무질서의 생태계이니 그저 아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동식물은 좋은 토양과 적당한 물과 햇빛이 있어야 잘 자란다. 이 조건이 만족된다면 자신이 뿌리를 뻗은 그 토양 위에서,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형상대로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란 생물들은 멋진 숲과 정글을 만들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각 나무의 줄기가 몇 센티미터이며 잎은 어디로 뻗어야 하는지, 심지어 나뭇잎은 어떤 색이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으로 그런 것들을 '계획'했다고 하더라도 그 예측과 계획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나무의 생김새와 성장, 모양새는 우리가 줄 수 있는 영향력보다 더 큰 요인들 (기후와 날씨, 토양, 주변 동식물들과 주고받는 상호 작용 등) 이 존재하여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무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잘 발휘하여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 보다 좋은 토양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적절한 물과 영양을 보충해 주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성장은 당사자에게 맡기되 성장을 잘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성장을 잘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과정도 결국 질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성장을 잘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과정에는 질서보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질서는 '순서'나 '차례'를 전제로 한다. A 다음에 B, 그다음은 C... 이와 같이 명확하게 정해진 순서에 따라 input을 넣어야 한다는 사고이다. 마치 입시 성공을 위해서는 어릴 때 먼저 영어 유치원을 들어가고 국제 중학교를 간 이후에 특수 목적 고등학교를 가는 트랙을 따라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처럼 말이다. 아쉽게도 생태계는 A를 넣는다고 A'가 나온다거나 A+B+C를 넣는다고 해서 기대했던 D가 나오지 않는다. 생태계는 우리의 기대에 별로 부응하는 법이 없다.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싹 몰아넣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거나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무너지고 쓰러져 버린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매일매일 꾸준히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작은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필요한 환경을 가꿔주는 일이다.  하나하나 각 식물이 건강히 잘 자라는 동시에 다른 동식물과 조화를 이루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지점,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유의해야 할 점은 이 균형점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균형점도 늘 변화한다. 이상 기후가 찾아오고, 생각지도 못한 천적이 생기면 생태계에 변화가 생기듯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끊임없는 변화가 찾아와 균형점 또한 변화한다. 



그래서 조직문화를 다루는 일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또다시 변화된 질서를 찾아내는 일의 반복' 이지 않을까 싶다. 이 과정은 단지 최신의 이론과 트렌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지속 가능하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은 대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나의 두 번째 저서,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에서 조직 안에서의 '사랑'을 논의한 바 있다. 스캇 펙(M.Scott Peck)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분별 있게 주고 마찬가지로 분별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분별력과 관련이 깊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고 해서 무조건 주지는 않는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자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녀가 원하는 초콜릿을 언제든 사줄 수 있지만 자녀의 치아 건강을 위해 초콜릿을 사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무조건 다해 주지 않고 때로는 지켜볼 때도 있고 필요한 시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실패의 경험을 겪어보게도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간들이 아이를 더욱 성장시키고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은 '분별 있게' 주고 '분별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육아를 하면서도 느끼지만 이 '분별력'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분별력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아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건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이것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잘 판단하여야 한다. 자칫 잘못해서 분별력의 기준이 내가 돼버리면 나의 기분과 감정에 이끌려 아이에게 그릇된 인식을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전달하게 된다. 나의 질서를 아이에게 강요하는 순간 아이는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어느 순간 어긋나 버린다. 


나는 혹시 나의 질서를 특정 대상에게,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조직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무질서한 조직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분별력의 기준은 무엇인가? 


문득, 최근에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데 재미를 붙이셨다는 한 지인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생명은 자기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꽃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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