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사는 제도를 설계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설계'한다.
인간의 본성은 발견되기보다는 창조되는 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제도를 설계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설계'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인간의 본성을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조직에서 어떠한 제도가 새롭게 도입될 때 이러한 고민들을 면밀하게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이를테면, 새로운 제도로 인해 조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믿음을 구성원들이 무엇으로 받아들일지,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인지 그래서 어떠한 행동을 유도하게 되며 이것이 조직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와 같은 고민들 말이다. 좋은 취지와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되려 바람직한 협업 문화를 훼손하고 구성원들의 동기를 저하시키는 이유는 바로 '제도가 인간 본성을 설계하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인간 본성이 제도로 바뀔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약한가요? 아무리 강력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인간 본성을 바꾸긴 어렵지 않나요?'라고 되묻는다면 본인의 자녀나 가족에게도 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묻고 싶다. 아이를 올바르며 최대한 건강하고 밝게 키우기 위해 우리는 가정 안에서 다양한 제도를 실험한다. '밥 먹고 난 이후 30분 안에 양치하기', '식사 시간에 영상 콘텐츠 보지 않기', '잠자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 쓰기'와 같은 작은 루틴들은 가정에서 아이의 '습관'을 기르기 위해 만든 소소한 제도의 결과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켜켜이 쌓여진 습관의 반복을 우리는 '성격'이라고 부른다.
사실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기 전에 이미 그에 대한 도덕적 입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판사가 아니라 꼭 변호사들처럼, 어떤 사례를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에 맞추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믿어야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근거를 사용한다. 이러한 성향은 증거를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증거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심리학자 리 로스는 이것을 '소박실재론'이라고 불렀다. 순진한 현실주의자가 '나는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본다.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그의 주장이 진실한 생각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주장에 대한 근거와 배경은 잘 살피지 않는다. 오직 '논리'에만 집중하여 타당한 근거를 이용해 문제를 철저히 살펴보고 판단을 내린다고 믿지만, '본인이 믿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한 인식은 발견하기 어렵다. 자신이 어떤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는지도 모른 채 배타적인 태도로 은근히 상대방을 밀어내며 판단한다.
이전에 내가 쓴 '딜레마의 편지'라는 책 (2022년 3월 출간)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조직 안에서의 행동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꼬집는 내용이다.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비슷한 형식으로 구성한 딜레마의 편지에서는 '딜레마'라는 악마가 14년차 직장인 L에게 보내는 스무 개의 유혹의 편지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나온 문장들을 인용해 본다. (이 문장들은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문장이 아니라 그럴듯하게 들리는 딜레마의 유혹임을 잊지 말자!)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을 판단하는 법, 경험은 통찰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편견을 만들기도 하지"
"어느 순간 하나의 사실은 사실로써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의해 오염되어 '왜곡된 사실'로 존재하지"
"그는 눈을 뜨고 살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눈먼 장님에 불과하다"
"인간이 한번 가지게 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강력한 믿음이 되고 결국 현실이 되고 말거든."
"따라서 너는 '내적 올바름'이나 '소속감' 혹 '조화'와는 다른 기준을 팀원들에게 제시하고 그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바로 '효율성과 성공'이라는 기준 말이야."
만약 당신의 직원들에게 현명한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구체적인 행동규칙을 도입할 것이다. 그 결과 직원들은 결코 현명한 판단력을 계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당신이 감독하고 있는 직원들의 능력 부족에 대한 당신의 믿음이 입증되고, 이것은 다시 당신으로 하여금 더 많은 규칙들을 시행하고 더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한다. 또한 당신이 만약 직원들이 올바른 목표를 좇아서 맡은 일을 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그들이 올바르게 일을 잘하도록 만드는 인센티브들을 도입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올바른 행동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그들이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를 모든 동기를 약화시킨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키우는 방법들을 시행하는 대신, 그러한 욕구는 한 조직을 세우고 운영하기에 너무나 빈약한 요소라고 확신한 책임자는 오히려 그것들을 약화시키는 관행들을 실시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에서, 법정에서, 진료실에서, 의미 있는 일을 모두 사라진다.
나는 조직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개인과 일의 관계,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핵개인 시대'에서 1인칭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인칭과 3인칭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의 전략과 방향, 그래서 이 일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목표를 먼저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듣고 개인과 일의 관계를 먼저 정립하고 조직과의 연결점을 그려가야 한다.
수용성과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도 효율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가치들이 서로 상충되는 것인가 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의 시스템과 프로세스, 자원은 반드시 효율화되고 최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게 그 잣대를 들이 되면 어떻게 될까? 나는 사람에게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되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다. 사람에게 매겨지는 값어치(연봉)와 능력에만 중점을 두어 '개인의 쓸모'를 판단하는 습관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우려 때문이다.
1+1 이 2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우리는 시너지라고 부른다. 시너지는 개별의 합보다 훨씬 큰 효과성과 영향력을 지니는 것을 뜻한다. 이는 효율성 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팀원들이 더 많은 기술을 계발할 기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량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감, 모두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중요한 목표 등이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현대 사회에서 조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일에 대한 관념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념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리더십의 스킬을 논의하기 전에, 동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올바른 성과목표를 수립하기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관념과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살펴보면 어떨까. 우리는 조직 안에서 제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설계하는 데 어떻게 기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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