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버리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더 성장시킬지를 선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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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포도나무를 키울 때 포도나무에 붙어있기는 하지만 열매가 없는 가지를 흙과 잡초들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고 한다. 가지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잘 살아날 수 있도록 다른 가지들과 단단히 엮어 놓아야, 이후에 시들어 늘어져있던 가지가 다시 건강하게 자라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흙과 잡초로 뒤덮여 엉망으로 보이는 가지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뒤덮인 흙을 털어내고 다른 '튼튼한 가지들'과의 '연결'시켜주는 일은 생명을 다루는 농부에게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2.
농부는 매년 포도나무의 성장을 점검해서 가지치기를 많이 할지, 좀 더 크게 자라도록 놔둘지, 지난해와 같은 크기와 형태로 되돌릴지를 결정한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포도나무가 야생 상태로 금세 회귀해서, 질이 고르지 않은 포도들이 달려 듬성듬성 자란 가지와 길고 억센 줄기가 사방으로 기어 올라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부의 가지치기는 제거나 형벌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활동이다. 잘라서 버리려고 하는 가지치기가 아니라 이후에 싱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 분명한 밑그림이 바탕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3.
삶에서 우리에게 다가온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을 종종 가지치기에 비유해 받아들이곤 한다. 그때의 가지치기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활동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원치 않는 형벌로 여겨질 때가 많다. 내 뜻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의 거부감과 배신감, 창피함과 수치심 또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감이 마음 안에 출렁이고 이 마음이 태도에 영향을 준다.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는 그룹이나 공동체 안에서 피상적인 가짜 연결의 경험을 하게 된다.
4.
피상적인 가짜 연결은 '헌신 없는 연결'이다. 즉 그저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뿐 이후에 열매를 맺기 어려운, 시들어 늘어져있는 가지들의 연결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결 관계는 정보만 나눌 뿐 감정은 나누지 않으며, 서로의 삶에 관한 사소한 내용은 알지 못하고, 뭔가가 필요할 때만 잠시 연결된다. 또한 서로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나서 극복해 본 경험이 없으며, 도움이 필요해도 직접적으로 (대면으로) 도움을 잘 요청하지 않는다.
5.
팀/공동체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각자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동시에 다른 가지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단지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팀은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유기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만큼,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 상태를 점검하고 조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 연결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개개인이 열심히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6.
때로는 관계 속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그 균열을 무시한 채 각자만의 성장에만 몰두하는 것은 포도나무가 야생으로 뻗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팀의 진정한 성장은 상호 신뢰와 협력에서 비롯되며, 때로는 불편한 대화와 조정을 통해 이 연결을 다시 다잡아야 한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서로 얽혀 자라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다하듯, 팀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기여가 어떻게 하나로 모여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협력을 이루어낼 때 팀은 더 큰 결실을 맺게 된다.
7.
우리의 삶에서 어려운 순간들을 지우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지치기야말로 진정한 보호일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지치기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라면? 가지치기를 통해 나중에 꼭 필요한 뭔가가 우리 안에서 탄생한다면?
8.
우리가 경험하는 상실이나 실패, 혹은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바로 그런 가지치기의 순간들일 수 있다. 그 순간에는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잃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잘라낸 가지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맺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가지치기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강하고 단단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없을지라도, 그 결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가지치기가 없었다면 결코 자라지 못할 더 풍성한 열매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그 어려운 순간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삶의 가지치기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고통과 상실이 단순히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자연의 섭리처럼 말이다.
9.
가지치기는 무엇을 버릴까가 아니라 무엇을 더 성장시킬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 일전에 조직개발팀의 일하는 방식을 '연결'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가지치기'와 같이 생각해볼만한 글이라 생각되어 링크로 소개를 해봅니다.
https://brunch.co.kr/@1slide1message/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