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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Dec 19. 2020

행복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내 인생의 키워드 변화

'성숙한 의존'을 꿈꾸다 

20대에는 그랬다.


성인답게 내가 알아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멀리 타국에 떨어져 계신 부모님을 생각했다. 그분들에게 작은 걱정이라도 안겨드리지 않는 것이 맏이로서 도리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 혼자 살게 되면서 '독립성'은 내게 필수불가결한 삶의 양식이자 가치가 되었다. 무슨 일이든 내 스스로 알아보고, 해결하며, 책임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타인에게 의존하기보다는 혼자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러한 태도는 '자기주도적'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을 수반하며 내가 생각하는 '어른다운 어른' 이 되어가는 과정의 이미지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어른이라면 응당 그렇게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 명료해졌다. 



'독립'이라는 키워드는 30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율'로 연결되었다. 


온전히 서 있는 것이 독립이라고 했을 때, 어떤 가치와 원칙을 가지고 서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스스로의 규율'을 의미하는 자율에 대한 고민은, 회사 안에서 나의 역할과 과제뿐만 아니라 친구나 동료와의 관계, 결혼, 육아와 같이 일상에서 그때마다 마주하는 변화를 겪으면서 생각과 고민이 구체화되었다. 


자율과 함께 많은 생각을 했던 개념은 '분리'다. 


'나는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내 개인의 생활에서도 내가 주장하는 가치와 철학을 일관성 있게 실천하고 있는가? 혹시 사회에서 보여지는 나와 내 개인의 삶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는 않은가? 조직 안의 일하는 과정에서 나는 어느 상황에서 분리감을 느끼는가? 가정생활에서 분리감을 느끼는 상황은 언제인가? 나라는 사람은 각기 다른 역할과 얼마나 통합되어 있고 조화를 이루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스스로의 원칙과 규율이 삶에 작동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자율'에 대한 것이라면 그 원칙과 규율이 삶의 모습에서 얼마큼의 거리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곡과 모순은 어디에 기인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분리'에 대한 것이다. 


자율과 분리에 대한 생각은 회사 안의 나의 역할과 맞물리며, 각각 브랜딩 관점/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조직문화를 조망하는 책을 쓰게 만들었다. 자신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한편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온전한 조직을 주장하는 이야기는 실은, 오래전부터 이어온 자율과 분리에 대한 생각에 기인한다. 



'독립'과 '자율'이란 가치는 그동안, 내가 삶을 헤쳐 나왔던 방식이며 내가 지향했던 성장의 방식이었다. 그런 내가 최근에 '의존'이란 키워드를 계속 떠올린다.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성숙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과연, 성숙한 의존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성숙하게 의존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자꾸 머리와 마음에 맴돈다. 


이전에도, 독립과 자율을 고민하는 끝에는 언제나 '성숙'이 있었다. 성숙은 마치 풀리지 않는 퀴즈의 정답이 담긴 카드를 간직하고 있는 비밀 상자 같다. 성장의 지향점, 삶이라는 여정에서 도착해야 할 지점,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어야만 하는 상태. 

성숙한 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도 모른 채, 그저 '삶과 사람을 대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태도' 정도로 느끼면서 막연히 '좀 더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를 먹다 보면 그곳에 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성숙한 삶의 관점을 터득하고자 다수의 자기 계발서와 인문, 철학 책을 들여다보고 꽂히는 문장에 밑줄을 박박 그으며 몇 번이나 곱씹고선 독서의 성취감을 통해, 이전보다 더 성숙이란 목적지에 한 걸음 더 전진했다는 안위를 가지기도 했다.  이전에 내가 최우선이라고 여겼던 가치가'독립'과 '자율'이었던 탓인지, 내가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생각을 깊게 하고 더 공감하고 더 배려있고 그래서 내가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면 성숙해질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해오면서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부부를 이루어 무촌 관계가 되는 결혼, 우주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 중 하나가 부부에게 들어와 이전과는 또 다른 관계를 탄생시키는 출산과 육아.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는 과정은 삶의 모습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온다. 


지금까지의 습관을 벗어나 새로운 규칙이 생긴다. 새 규칙이 몸에 붙는 과정에 인내와 고통도 따른다. 익숙해질 때쯤 아이가 태어나거나 아이가 커가면서 때마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문법과 규칙이 또다시 새로 생겨난다. <이탈-생성-고통-적응-이탈..> 이러한 순환의 과정은 어느 순간 인생에서 반복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고단한 과정 속에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차원의 삶의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기쁨은 한 마디로 '나 혼자 사는 것에서 벗어나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기쁨'이다. 아내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자녀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된다. 가족의 웃음이 곧 나의 웃음이 되고, 그 웃음을 지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은 계속된다. 



'혼자만의 삶을 떠나 함께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변화는 비단 개인이나 가정뿐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위해 사회에서 희생과 헌신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코로나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져 수도권의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자 이 소식을 들은 의사, 간호사, 의대생 2600명이 수도권 근무를 자원했다. 경기도의 한 병원 의사는 쏟아지는 확진자에 병상이 부족해지자 자신의 병원을 통째로 내놓았다. 방역 사각지대인 어르신이나 외국인들을 돕기 위해 매일 반찬과 마스크를 전달하고, 재난 문자를 아랍어, 태국어 등으로 번역해 난민 커뮤니티에 제공하는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이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굳이' 노력과 시간을 들여 도움을 전달하려는 사람들 덕택에,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를 꿋꿋이 버티고 이겨나갈 수 있다. 



성숙은 어떠한 삶의 태도인가? 그것은 자신이 부단한 수양과 훈련을 통해 이루어낸 성장의 결과물인가?


이삽십대에 그토록 고민했던 독립과 자율은 무엇 때문에 필요했던 걸까? 당시엔 그저 '성숙'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독립적으로 설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의 규율을 통해 올바르게 자율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독립적인 태도와 자율적인 행동이 성숙을 모두 설명해 주진 않는다. 다시 말하면 독립과 자율은 성숙의 필요조건일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누구나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역사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어느 누구도 '강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성숙은 어쩌면, 우리는 '함께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절절하게 깨닫는 과정이 아닐까.


서로의 다름은 각자의 약점을 채우기 위함을 아는 것, 나의 불완전함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채워지기 위함임을 아는 것. 그래서 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나 아닌 다른 사람 때문'임을 깨닫게 되는 것. 독립과 자율도 따져보면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존재한다. 


어쩌면 진짜 성숙은, 서로의 필요를 더 잘 이해하고, 서로의 도움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래서 결국 우리는 함께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연애 초기에 애인과 다투게 되는 대다수의 이유도 결혼 초기에 남편/아내와 다투게 되는 이유도,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내가 힘들어했던 이유도, 내가 새로운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못한 탓이 아닐까. 


행복의 비밀은 어쩌면 '성숙한 의존'에 있을지도 모른다.  



30대 마지막 여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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