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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Jan 02. 2021

조직이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과 개인의 통합성에 대한 단상, 스캇펙이 이야기하는 공동체의 특성

스캇 펙의 <마음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를  다시 읽었다.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를 쓸 때,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과 특성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이미 정말 많은 영감과 도움을 받은 책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조직과 개인의 통합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여 읽어보았다.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어쩌면, 


조직이 단지 개인들에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성을 타인과 함께 일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채워나가는 곳으로, 인간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고 온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탈바꿈'은 '파괴'와 대조되며  변화의 중요한 열쇠로 설명된다)


스캇 펙은 공동체의 특성 중 '통합성'을 매우 강조한다. 그리고 공동체에  파괴적인 행태를 나타내는 통합성의 반대말로 '칸막이하다'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우리 심리학자들은 '통합하다'라는 동사의 반대말로 '칸막이하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적절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일들을 철저히 구분된 정신적인 칸막이에 집어넣는 놀라운 능력을 가리킨다. 이렇게 칸막이에 넣어진 것들은 서로 부딪치는 일도 없어서 어떤 상처도 일으키지 않는다.



스캇 펙에 따르면 예를 들어, 어느 사업가가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신과 인간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월요일 아침이면 아무 거리낌 없이 독이 든 폐수를 하천에 흘려보낸다면 그 사람은 한 칸에는 종교를, 다른 칸에는 사업을 따로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중 잣대, 매 상황마다 필요한 가면을 쓰는 거짓된 페르소나, 스스로에서 떨어져 누군가에 의존하며 진짜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분리감은 '칸막이'사고에서 비롯된다.


스캇 펙은 진실되고 신성한 것을 이용해 자신의 천박함을 숨기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이것 역시 '칸막이하기'라는 심리적 속임수임을 지적한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누가 봐도 분명한 순수성을 이용하고, 상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고상함을 이용하고, 추악함을 감추기 위해 아름다움을 이용하고, 악행을 미화하기 위해 거룩함을 이용하는 짓이다. 
...
신성모독에는 정말 악마적인 측면이 있다. 'diabolic(악마적)'이라는 말은 '따로 던지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 diabolein에서 유래되었다. 반대말은 '함께 던지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sym-bolein 일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symbolic)'이란 말은 통합을 가리키고 '악마적(diabolic)'이란 말은 칸막이하기를 가리킨다.
...
가끔 불경스러운 생각을 해도 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은 신성모독자가 아니다. 오히려 입으로는 신성한 생각을 떠벌리면서 행동은 불경스럽게 하는 사람이 신성모독자다. 요컨대 신성모독은 칸막이하기의 한 가지 형태로서 일상적으로 진리를 떠벌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밥 먹듯 거짓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입으로는 정의와 진리, 사명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개인의 삶은 분리되고 무너져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불완전성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그 불완전성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 안으로 꽁꽁 감싸 안고 홀로 버티려고 하는 이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왜곡된 행동으로 숨기려는 태도...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어떻게든 발견되고, 결국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스캇 펙이 이야기한 대로, 어떤 것이 일상적인 것으로 굳어지면 대개 이것과 지나치게 유착돼 제대로 조망하지 못한다.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 우리가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것들, 당연하다고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들에서 의심과 의문을 제기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배움의 장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포'를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공포, 갈등의 공포, 정체성 상실의 공포, 생활의 변화에 대한 공포로 설명했다. 스캇 팩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진정한 통합성을 위해 '고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즉 앞서 언급한 공포들을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오는 고통이 뒤따라야 비로소 온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통합성에는 반드시 고통이 뒤따른다. 문제들이 서로 부딪혀도 내버려 둘 줄 알아야 하고, 상충적인 욕구와 요구, 사욕들이 불러일으키는 긴장을 충분히 경험해야 하며, 이것들로 인해 정서적으로 상처도 받아봐야 통합성을 획득할 수 있다.
...
공동체를 형성하고 평화를 구축하려면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와는 다른 북소리에 맞춰 나아가야 한다. 서로 다른 북소리를 알아듣는 능력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이 능력의 핵심은 통합성의 소리와 통합성이 결여된 소리를 구별해내는 데 있을 것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 두려움, 무능력, 약함, 미숙함, 실패가 용인되고 이러한 부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강점으로 채워지고, 함께 또 다른 차원을 향해 나아가는 집단을 우리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시너지'는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불완전한 개인들이 자신의 상처를 내려놓았을 때 그것이 타인의 배움과 도움의 기회로 '탈바꿈'되는 곳 말이다.


스캇 펙의 말대로 '불완전함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몇 안 되는 특성'이다.


모든 진리가 그렇듯,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통합성은 불완전함에 대한 인정에서부터 나온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불완전함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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