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파커 J 파머 / 가르칠 수 있는 용기
(나는 국민학교 세대다;)
선생님께 이런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일기장에 꼭 '나'라는 말을 많이 쓰는 학생들이 있다. '내가~','나는~'어쩌고, 저쩌고. 누가 내가 썼는지 모르나. 일기장은 당연히 '나'가 쓰는 것인데 굳이 '나'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나."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 역시도 일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쓰기에서 '나'라는 주어를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이들의 글쓰기에서 '내가' '나는'이라는 말이 보이면 무슨 이유로 굳이 '나'라는 말을 붙었는지, 해당 문장을 여러 차례 읽으며 곱씹어 보기도 했다.
미국의 교사들의 교사라고 불리는 교육 지도자 파커 J 파머는 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주관성에 대한 학계의 편견은 우리 학생들에게 신통치 않은 글("나는 믿는다"라고 쓰지 않고 "...라고 믿어진다"라고 쓰는 것)을 쓰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과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생각도 왜곡시키고 있다.
...
학생들을 내면적인 삶과 절연시킨 것이다
...
우리가 그들에게 주관적인 자아는 가치 없고 비현실적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파커 J 파머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아의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가르침의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은 의심스럽고 오염된 것으로 폄하하고 객관적 지식 형태만 숭상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내적 진실로부터 멀어진 거리감이 다양한 왜곡을 만들고 나아가 자아를 소외시켜 자기분열까지 이르게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실체와 대상들에 더 큰 권력을 부여하고 모든 문제는 반드시 기술적인 해결 방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이 우리를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줄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들 - 이를테면 마음이나 내면의 세계 - 은 그저 환상이자 도피처로 여긴다면 우리의 자아는 어디서 인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세상의 의미 있는 변화는 외부적인 요소, 가령 예산과 방법론, 커리큘럼, 제도적인 개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의 마음,
반성하는 능력,
온유함,
책임의식,
깨달음,
감당해보겠다는 의지.
그래서,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나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인생의 글쓰기에서 각자의 첫 문장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보다 조금 더, 각자 스스로 겪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인생 경험의 모든 측면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