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를 좋아해서
집에 작가의 책이 20권쯤 있는 거 같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저자박완서출판현대문학발매2010.08.02.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는
2011년 작고한 작가의 살아생전
마지막 작품이지 싶다.
물론 작고한 뒤에도
작가의 책이 출판되긴 했지만
출판되지 못했던 글들을
모아서 나온 책으로 안다.
책을 덮을 때쯤 드는 생각은
살아생전 애지중지 가꾸던 작가의 자식 같은
앞마당 꽃,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을까?
주인 잃은 앞마당에
온갖 잡풀들이 주인 행세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 보낸 그리운 이들을 만나
얼싸안고 이야기 보따리를 푸느라고
사랑스런 꽃나무들은 잠시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감은
친 오빠의 죽음과
20대 중반이던 아들의 죽음이지 않을까.
미망저자박완서출판세계사발매1996.10.15.
한창 작품<미망>을 연재하실 때
교통사고로 하나뿐인 아들을 떠나보냈다.
대작이 될 뻔했던 <미망>은 2권으로 서둘러 마무리 됐다.
그때 애끓는 고통과 심정을 글로 남기셨는데
종교의 힘에 기대어 절규하는 한 사람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말씀만 하소서> 는
읽는 저도 힘이 들었습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저자박완서출판문학동네발매2006.08.25.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시위운동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픈 마음을
통곡의 벽에 폭포수처럼 쏟아내는데
애간장이 끊어지는 아픈 이야기에
어쩔수 없이 박완서 작가의
먼저 보낸 아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마지막 보금자리는
구리시 아치울 마을에 있는 노란담벼락 집이었다.
닭장같은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흙집에 살고 싶어하셨는데 꿈을 이루고 가셨다.
작가가 벚꽃같은 스무살 시절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작가의 계획된 길이 바꿔버렸다.
서울대 인문학부에 입학했지만
며칠 다니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피난길 행렬에 함께하지 못했다.
당시 온 가족이 겪었던 고초가 쓰라리다.
전쟁이 잠잠해지자
작가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장으로서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서울대 며칠 다닌 학력도
사회생활에서는 꽤 쓸모가 있었단다.
자존심도 쌔고 도도했던 작가는
22~23살에 결혼하여 아이 다섯을 낳아 키워내고
마흔 나이에 <나목>으로 문학계에 등단한다.
취재하러 온 기자가 마흔 아줌마가 이런 소설을
적었을리 없다고 의심하면서 집안을 두루두루 살피며
글은 어디서 쓰냐?
다른 글도 보여달라고 해서
그동안 적어뒀던 원고지 글을 보여줬다고 한다.
등단하면 원고 의뢰가 많이 들어올지 예상하고
부지런히 글을 써놓았던 주도면밀한 작가였다.
늦은 나이에 등단 했지만 괴물같은 이야기꾼으로
뛰어난 문학작품을 많이 발표 했고
문단계에서도 인정 받고 독자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가의 명성과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대 명예문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안 가본 길이 아니라
못 가본 길...
가려고 했으나
어찌어찌하여 못 가본 길...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오빠도 살아 있고
작가도 벚꽃 가득한 캠퍼스에
흠뻑 취해 학문의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못 가본 길을 걸어갔다면
내 추측으로 남편이 바뀌지 않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이 있다.
항상 지금이 최선의 선택으로
놓여진 길이라생각하고 살지만
이따금씩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
허무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책은 읽을 수록 더 많은 책을 읽게 한다.
작가가 곁에 두고
손이 자주 갔던 책을 소개했는데
구해서 꼭 읽어보려고 한다.
끝부분에는 추모글도 몇 편 실렸는데
내 고향이 통영이라 그런지
박경리 선생님 추모 글이 애잔하다.
김치, 된장, 제철 채소를
바리바리 챙겨주시던 박경리 작가가
박완서 작가에게는
친정 언니같은 분이 아니였을까?
볼락 젓갈 맛을 아는 나는
이 밤에 볼락젓갈을 넣은 김치가 먹고 싶다.
박완서 작가는 생전
자신의 이름을 건 문학관이나 기념관을
짓지 말라고 유언했다.
그래서 현재 구리시 인창도서관
한 코너에 박완서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공간을 만들어놨다고 한다.
호미저자박완서출판열림원발매2014.09.30.
산문집 <호미>도 나왔다.
아침마다 명상하듯
흙마당에 올라온 풀을 뽑았다고 한다.
그나저나 박완서기념관이 생긴다면
작가의 손때 묻은 호미는
보물 몇 호쯤 되어야 한다.
작가 박완서를 만나는 소설도 좋지만
사람 박완서를 만나는 에세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