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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샘 Feb 24. 2020

화장을 오래하는 사람일수록 비도덕적이다?

삶의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희망샘이야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도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고. 그중에 하나가 여성성에 관한 것이다.

돌 맞을 각오로 하는 말이지만 어릴 때부터 예쁘장(?)하다는 말을 들어온 나는 왜 그런지 그런 말에 방긋 웃어주는 것이 싫었다. 아마도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있는 인형은 되기 싫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은 억압적인 사회분위기였고 그에 대한 반기로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깨어있는 여성은 외모 따위를 꾸미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때는 심지어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가 유방암을 진단받고 처음으로 엉엉 운 것은 탈모를 견디다 못해 혼자 미용실에 가서 삭발하고 온 날이었다. 항암치료를 한 지 정확히 10일쯤 지나자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는데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었다. 다른 고통은 참아낼 수 있었지만 스님도 아니고 연기혼을 불사르는 여배우도 아닌데 스스로 강제 삭발을 해야 했던 그 슬픔은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울다 보니 지금 생사가 오가는 시점에 머리카락 따위가 문제야?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철딱서니가 없어도 열두 번 없구나 싶었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받아 에너지 소진하고 그렇잖아도 없는 식욕이 더 떨어지면 결국 항암제 부작용이 더 심해지고 치료 결과는 나빠질 것이 뻔한 것이었다. 안타까운 눈길만 주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더 미안했다.

치료에 집중할 때는 여성임을 포기하자고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거울을 아예 보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론에서도 일단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그다음 안정, 소속감과 인정, 자기실현의 단계로 간다는 것도 실감했다. 이 순서는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예전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나치게 외모를 꾸미는 사람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는 비도덕적인 사람인가'라는 논쟁이 잠시 있었다. 나는 그렇게 주장한 미국 대학의 논문도 있었다고 제일 먼저 화두를 던진 쪽이었다. 지나치게 외모에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여성보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는 여성이 진실성, 더 나아가 도덕성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기에 아마도 나는 찬성하는 입장에 서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많은 돈과 시간을 쏟은 것인가 하는 기준이 없으므로 이런 토론이 지켜보는 많은 여성들은 내심 불편했을 것이다.

이 글의 첫 문장을 나도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했다. 왜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까. 왜 굳이 남의 눈에 예쁘게 보이기를 바랄까. 진정 여성의 무기는 외모인가. 어떤 웹툰이었나. 누가 예쁘다고 하니 그 말 들은 여성이 "너한테 그 소리 들으려고 이렇게 태어난 거 아니다."라고 해서 웃었다. 이렇게 여성의 마음은 복잡하다.

시간이 지나 치료가 끝나자 나의 민머리에도 거짓말처럼 머리카락이 잔디처럼 솟아나고 이제는 커트를 할까 단발을 할까 매일 거울을 보며 요리조리 연구해본다. 매일 보는 똑같은 얼굴인데도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예뻐지려나 하고 유튜브에서 물광피부에 효과 있다는 들기름 꿀팩을 지극정성으로 해댄다.ㅎㅎ


이제 좀 살만 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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