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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샘 Feb 25. 2020

생애 잊지 못할 순간 (feat.주치의)

삶의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희망샘이야기

"암입니다.”

의사는 내 눈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진료실 벽에 환하게 붙여놓은 나의 초음파사진을 보며 지시봉으로 가리켰다. “여기 보이시죠?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그러고는 한참 차트를 보고 있다가 자신의 판단이 틀림없다는 듯이 단호한 표정으로 백지를 꺼내더니 사람의 상체를 그리고는 암의 위치를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분명히 귀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있는데 눈앞에 불벼락이 떨어진 듯 아득해졌다. 바깥은 불볕더위가 한창이었다. 111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매일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던 2018년 8월이었다. 나의 남은 인생은 창 밖에 인정사정없이 내리쬐는 불볕더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라고 의사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는 곳은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세계였다.    


한 번도 지금처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었다. 둘째가 돌이 되면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녔고 늘 바빴다. 바쁜 것이 당연했고 조금의 여가가 생기면 또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다. 요즘 몸이 자주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입맛이 없으니 살이 빠져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다고 흐뭇해했다.     


직장 근처에 헬스장이 있었는데 퇴근 후 다니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점심시간에 운동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은 남들과 다를 것 없이 1시간이다. 1시간 동안 밥 먹고 운동하고 샤워하고 자리에 앉는다. 가장 짧게 점심을 해결하는 방법은 헬스장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는 것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워서 계산부터 하고 식사하고 헬스장 안에서도 뛰어다녔다. 모두들 내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워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 몸 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생각해보니 건강검진을 필수항목만 하고 정밀검사는 바쁘다는 핑계로 예사로 여긴 점이었다.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에서 유방촬영은 기본검사로 되어있지만 유방초음파는 정밀검사로 되어 필수항목이 아니다. 지난 2년 전 검진에서 유방촬영결과 치밀 유방이라고 하여 정밀검사를 권유하는 진단결과가 있었다. 주위 동료들에게 물으니 너도 나도 치밀 유방이란다. 한국여성의 대다수가 치밀 유방이라고 하니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 오히려 자궁근종이 있어서 6년째 자궁내장치인 ‘미레나’를 하고 있는 것만 신경 쓰였다. 미레나 사용시한인 5년이 지나 근종제거수술을 하려고 간 병원에서 간편한 방법을 두고 왜 수술을 하냐는 말에 다시 미레나를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유방이 문제일 줄이야.    


일을 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찌릿하고 통증을 남기고 지나갔다. 생리할 때와는 다른 기분 나쁘게 길고 더 센 통증이었다.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직감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바로 병원에 가지질 않았다. 상담스케줄은 대개 한 달 전에 잡히는데 내담자에게 약속을 바꾸자고 전화하는 일은 폐를 끼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단한 사명감으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랬을까. 그들은 내가 아픈 것도 참고 상담한다는 것도 몰랐을 텐데 말이다. 미루고 미룬 유방초음파 그리고 두 번의 조직검사의 고통을 견디고 찾은 병원에서 눈앞의 저 의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은 눈꼽 만큼도 없이 확신에 차서 “그럼 몇 기인가요?”라는 물음에 “2기 이상입니다”라고 했다. 등꼴이 오싹했다. 2기만 되어도 얼마나 좋을까. 그 후에 더 큰 병원에서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아만자가 되었다.    


진료실에서 나오니 중증 등록과 병원 이관서류에 대해 간호사는 대본을 읽듯이 설명했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밑도 끝도 없고 영문도 모르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으로 정신이 명료해지는 기분이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의 실타래가 얽힌 듯한 기분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 진단받던 순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다음날부터 직장인에서 휴직자로 바뀌었고 점심시간에 헬스장 가는 건강한 사람에서 아만자로 바뀌었다. 아침에 만원전철 타고 출근하고 퇴근길에 장 봐오는 일 같이 늘 당연했던 일상은 마치 기차가 급정거하듯이 멈췄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저 너머의 세계에나 희미하게 존재했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엄청난 속력으로 내 앞에 놓였다.     


당시 한*******  <100일글쓰기>에 참여중이었다. 100일간 글을 써서 지정된 카페에 올리는데 완주자체가 목표였다. 낙서처럼 쓰는 글이라도 매일 쓰자는 모토였다. 매일 글감을 떠올리며 살아오다가 진짜 어마어마한 글감이 나왔지만 늘 생각하던 소소한 일상 같은 일일드라마에서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의 슬픈 사연을 써야하는 휴먼다큐로 장르를 느닷없이 급선회할 수는 없었다. 내게 주어진 이 어마어마한 미션에 대해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예감하고 있었다. 아만자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아마도 매일은 어려워도, 고통에 신음하는 하루하루가 아니라면 아마도 생존신고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고통을 견디고 버티다 보면 웃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숨통이 틔였다. 그렇게 쓰여진 글은 언제 어느 때 생을 마감한다고 해도 여기 숨쉬었던 흔적을 남기려는 이가 있었다고 증명해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나는 이겨냈다. 세월이 흘러 옛일처럼 말하는 지금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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