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소개해야 적당한 걸까
너와 나의 삶이 다른 것은
태어난 곳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주어진 상황에서 택한 선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A와 B사이의 C 라는 말처럼, 크고 작은 일의 선택이 어우러져 지금의 내가 그려진다.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다가, 나를 소개한다는 의미에 대해 곱씹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살아온 시간들을 소개하는 게 나를 소개하는 것일까?
과거의 선택들의 예시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자기소개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선택을 오픈해야 ’적당한‘ 자기소개가 될까.
이혼소송을 겪고 있는 나는, 아직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전남편의 불의로 상간녀 소송을 시작으로, 이혼을 안 하겠다는 전남편과 협의가 안되어 어린 딸의 가정환경을 두고 고민 끝에 결국 이혼소송을 같이 진행 중이다.
서로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혼은 차치하고 양육권 결정문제로 법원에서 가사조사관의 가정방문과 부모교육이라 불리는 상담까지 진행했다.
중간에 양육권의 다툼이 심해, 법원은 임시양육자로 엄마인 나를 지정해 주었지만, 전남편은 그 사전처분 결과를 놓고 항고까지 했다.
얼마 전 항고 사건은 내가 승소했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판결을 기다리는 마음은 소송을 시작했던 1년 4개월 전의 그때보다 한결 가볍다.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중이라 그런지, 나의 소개를 해달라는 말을 들으면, 내 머릿속은 버퍼링이 걸린다.
‘이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거짓말하고 싶진 않은데’
내 이름. 내 나이. 하는 일. 난 딸이 하나 있고, my ex has cheating on me, so I’m doing a divorce.
이렇게 간략하게 내 소개가 끝이 난다.
그러면 상대방은 놀라고, 미안해하고, 안쓰러워하고,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어려워하고, 불편해한다.
마법 같은 자기소개다.
한 번은 정말 딱 저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길을 물어봐서 알려주며 우연히 만난 외국인이었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한번 보고 안 볼 사이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아메리칸이니까 조금 다르려나 하는 약간의 궁금증으로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소개했다.
아메리칸의 반응도 여지없었다. 아니 더욱 오버스러웠다.
이혼을 진행하는 처음 1년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치부라고 생각했고, 약점을 보여주기 싫었다. 나의 선택을 받은 몇몇 사람만 이 사실을 알았고, 나머지는 모른 채로 뒀다. 아니, 내가 그런 체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체 하는 내가 새삼스러웠다.
‘이건 내 잘못도 아니고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것뿐인데, 내가 이걸 왜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포장해야 하지?‘
다른 사람에게 거짓으로 꾸며 말하는 내가 싫었다.
어느덧 아무 일 없던 1년 전 평범했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지금인 것처럼 말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진실만을 말하면 편할 것 같던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아 괜히 말했다’ 하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릴 때가 있다.
상대방의 저런 마법 같은 반응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 편하자고 상대에게 내 불편함을 떠넘겼나 싶어 내가 되려 미안하기도 하다.
나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너무 쉽게 보여주는 것 같아 이상하게 아까운? 묘한 마음도 든다.
웃긴다. 이게 뭐라고…
대체 뭔데 내 소개에서 나를 이렇게 고민스럽게 하는 거냐고….
나는 그냥 난데, 나를 더 소개하라니 내가 겪은 사건들로 나를 소개하는 게 맞냐 허공에 대고 따져 묻고 싶다.
누군가에게 나를 말로 설명하기란 참 어렵구나.
이력서에 자기소개가 20대 때의 그때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