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의 시작
법원에서도 이 질문을 꽤나 들은 것 같다.
변호사에게, 가사조사관에게, 법원지정 상담사에게, 조정위원에게, 판사에게.
나는 준비서면으로, 대답으로, 꾸준히 이혼소송의 사유를 설명했다.
”가정을 스스로 깨뜨린 사람을 더 이상 가족으로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선택해 냈던 배우자였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 같았던 사람이었다.
사랑만이 유일한 내 삶의 빛이었던 젊고 어린 날, 내가 얼마나 외골수에 편협했는지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던 자신감에 찬 나날들을 모두 그 사람 하나로 채웠다.
나 스스로 충분하다는 느낌 하나로 모든 생각을 멈췄다.
그렇게 내가 만든 ‘가족’의 결말이 내 눈앞에서 스러져 간 그날은 어느 휴일 한 여름 낮이었다.
나는 예쁜 3살 우리 아이를 베란다에서 물놀이시켜주고 있었고, 그는 우리 방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아이를 목욕시켜주고 나서 방에 들어와 물기를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갈아입혔다. 아이는 낮잠준비를 하며 책을 보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다 문득 그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우리 아이의 사진이 궁금해서 알고 있던 비밀번호로 쉽게 잠금을 풀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웬 연인들의 대화 메시지창이었고, 처음 순간 나는 다른 이들의 대화의 캡처화면을 보고 있는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자 외도의 현장의 한가운데에서도 나는 그를 믿었다.
점차 화면은 캡처가 아니라 스스로 작성한 대화 메시지임이 자각될수록 내 손은 점점 떨리고, 동공은 확장되고,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나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내 휴대폰으로 그의 휴대폰 화면을 촬영했다.
아이 앞에서는 다투는 모습을 보여줄까 봐 자는 그를 깨우고 다른 방으로 그를 불러 따졌다.
횡설수설하는 그를 향해 내 목소리가 커지자 아이가 방으로 들어왔고, 갑자기 옷가지를 챙기며 우는 엄마를 붙잡으며 울었다.
만약 그 집에 우리 가정만 살고 있었다면 그를 내쫓았겠지만, 나는 시댁 어른들과 같이 합가 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식구들과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일단 친정으로 피신했고, 터놓고 말도 못 하고 가슴에만 담아두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 아기는 어떻게 하지. 내가 무얼 해야 하지….’
일단 다음날에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간 나는, 어찌어찌 아이를 재우고 다시 증거를 수집했다.
그가 타는 자동차의 스페어키를 찾아 주차장에 내려가 그의 자동차에 블랙박스 메모리칩을 가지고 올라와 노트북에 꽂고 하나씩 돌려보았다.
저장되어 있던 모든 순간에는 상간녀와 여러 가지 대화가 있었고, 나는 울면서 화내면서 귀를 막으면서 그 순간에 참여했다.
그렇게 증거를 하나 추가했고, 다른 증거들을 찾았다.
또 다른 어느 날에 그의 자동차 트렁크를 열어보는데 ‘이게 뭐지’ 싶은 하얀 작은 약통박스 같은데 박스단위로 여러 개가 묶여있었다.
궁금하면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휴대폰에 인터넷이면 무엇이든 알 수 있는 지금을 살고 있어 나는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그건 발기부전치료제였다.
내가 배우자로 선택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고, 나를 구렁텅이로 자꾸 밀어 넣으려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만든 가족인데.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사람인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혼은 나의 아이의 가정환경이 걸려있으므로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고 일단 보류했다.
그 당시 내가 제일 화풀이할 수 있는 대상은 상간녀였고,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상간녀를 파멸시키는 일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고 있는, 딸을 두 명 가진, 남편도 버젓이 살아있는 여자였다.
직업윤리에 어긋한 사람이 벌인 일이라서.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남편의 휴대폰을 열어본 다음날, 직장에서 가까운 아무 법률사무소에 연락해서 상담예약을 잡고 그날 상담이 가능한 지점을 방문했다.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하고 마치 ‘네 사연들을 들어줄게’ 하고 자리한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았다.
상간녀 소송을 바로 진행했고, 이혼소송은 조금 더 고민하겠다고 했다.
‘나의 아이를 위해 참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나의 아이와 나를 위해 이혼해야겠다’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2주가 걸렸다.
그렇게 나는 이혼소송의 원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