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반쯤 감고 봅니다.
온전한 나로 작성한 서면이 돈 주고 만든 내 편인 변호사의 손을 거쳐 준비서면이란 이름으로 내 의견에 한껏 힘을 보태 법원에 제출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상대 쪽도 내 서면을 볼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나도 상대의 서면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내가 신나게 작성한 서면은 상대가 볼 때 별로 신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나와 의견이 다름을 벗어난 완벽한 반대이고, 심지어 나를 폄하하거나 비난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 같은 일이 벌어졌음에도 서로 다른 서사를 쓰는 것은, 각자가 다르게 기억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임이다.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므로.
나의 경우는 의견차이가 정말 크다.
1. 이혼 : 한다 vs 안 한다.
2. 아이의 양육권 : 엄마가 가진다. vs 아빠가 가진다.
3. 재산분할 : 현재 시가의 집에 들어간 자금중 일부의 비용 등 재산분할 상환 vs 파산신청으로 재산분할 금액 없다.
하나부터 마지막까지의 의견이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아이와 배우자를 놓고 외도를 자행한 상대의 유책임에도, 법원은 아이가 아빠를 반긴다는 이유로 양육권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유책과 양육권의 문제는 별개라는 의견이 기본배경이다.
그것이 왜 별개일까 싶다가도 내가 아니라 아이의 시선에서 생각하면 그런 듯 아닌 듯 애매하다.
아이는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면이 강한데, 부모 어느 한쪽의 외도 자체로 아이 자신도 버림받은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위의 상황에서 ’ 아이가 부모의 외도를 안다 ‘라는 가정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이므로, 아직 어린아이인 나의 아이는 해당하지 않는다.
아이가 받을 충격과 남자에 대한 선입견을 고려해서 아이는 아빠의 외도를 알지 못한다.
나와 정반대의 의견을 필사적으로 정성 들여 작성해 놓은 그 서면을 볼 때는 정말 화가 많이 난다.
그 안에는 나를 비난하는 말도, 폄하하는 말도, 조롱하는 말도 쓰여있다.
정말 읽기 싫지만, 그 의견에 반박해야 하기 때문에 읽어보아야 한다.
업무 중에 변호사를 통해 도착한 상대의 서면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고 화가 나서 업무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스크롤바를 무심히 내려 속독으로 대-충 읽고, 서면의 내용만 프린트한다. 그리고 마음먹은 어느 조용한 새벽에, 그 글을 정독하면서 표시해 가며 내가 어느 부분에서 반박하는지. 그 이유 등을 간단하게 메모한다.
그러고 나서, 메모를 토대로 반박하는 서면을 작성한다.
그렇게 작성된 서면을 변호사님게 제출하면, 또 다른 준비서면이 발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