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확인
나는 10년간의 결혼생활을 이어온 남편의 외도를 알아버렸다.
어떤 의심스러웠던 상황도, 둘 사이의 냉전도, 큰 고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우연히 남편의 휴대폰을 열었고, 나를 반긴 첫 화면이 우연히 상간녀와의 대화창이었다.
진실의 낯빛은 차가웠다.
나를 둘러싼 따뜻한 세상의 온도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모든 감각은 무감각해졌고, 머릿속은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 아등바등했다.
남편의 휴대폰에 보이던 그 대화창을 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대화가 이어지고 이어져 끝도 없던 그 대화들의 맥락을 짚어가면서 찍고 또 찍었다. 그렇게 찍다가 너무 화가 나서 자고 있던 그를 깨워 추긍했다. 그래서 대화의 사진은 대략 20장 내외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대화가 시작했던 때가 언제인지를 추가로 더 찍었을 것 같다. 그리고 대화창에 연인들의 대화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 이를테면 ‘사랑’ 이라던가, 서로의 부부의 단절을 계획하는 ‘이혼’ 이라던가 그런 단어들을 더 검색해서 그 주제에 대한 둘의 반응들을 찾아 또 찍었을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둘이서 대화중이었던 현재의 상황에서부터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 어느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사진을 찍었다.
애초부터 이혼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증거를 모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 뒤에 행했던 그의 배신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가 내게 숨긴 그의 진짜가 어떤 것이었는지가 알고 싶어서 여러 증거들을 찾아 모으기 시작했다.
외도를 알게 된 첫날, 사진을 찍고 추궁을 하고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갔다. 다음날이 월요일이었던 관계로, 잠깐의 마음만 추스르고, 나의 출근과 아이의 등원을 위해 다시 시댁으로 들어갔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재우고 나서, 또 다른 증거를 확보했다.
그것은 남편 차의 블랙박스였다.
어쩌면 남편도 이번 외도로 인한 가정의 파탄을 내심은 바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친정으로 가서 자리를 비운 한나절의 시간 동안, 그는 내가 추가로 알아낼 진실이 무서워 그 어떤 증거의 조작도 시도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이 보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마치 스스로도 그것을 원하는 것처럼.
블랙박스의 영상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노트북을 들고 내려가서 남편의 차키로 차 문만 열면 모든 준비가 완료였다.
당시 나는 시댁에서 합가 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 안에서 영상을 돌려보고, 내 마음껏 반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차 안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더운 7월의 여름밤, 어두운 차 안에서 블랙박스 카드를 노트북에 꽂고 최근의 영상부터 하나씩 재생했다.
영상 속에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나의 세계는 확실하고 철저하게 무너졌다.
블랙박스 안 모든 영상을 노트북에 저장했다. 처음 노트북을 들고 내려갈 때 USB를 들고 갈 생각은 못했다. 그래서 집으로 올라와서 노트북에 있는 파일을 한번 더 USB에 옮겨야 했다. 내 눈으로, 귀로 확인한 그들의 불륜을 보고 나는 침착할 수 없었다. 모두가 잠든 밤에, 남편에게 큰 소리를 냈고, 주무시던 시어머니가 나와서 무슨 일이느냐고 물었다.
“저 놈 바람 펴요”
울면서 파일을 USB로 옮기는 중이었다. 모든 작업이 끝나기까지 시어머니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계셨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USB를 뽑자, 시어머니는
“그거 나한테 줘라. 저 놈이 가져가면 안 되잖아. “
달라고 하면 내가 정말 순순히 믿고 드릴 줄 아셨을까? 왜 달라고 하신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어머니도 어차피 저 놈 편이잖아요.”
하는 말에
“그래, 저 놈이 모르는 곳에 꼭꼭 숨겨놔.”
마치 나를 위하는 말 인듯했다. 나의 어머니가 아닌 그의 어머니이기에 나는 적대적이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 앞에 가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당신 아들이 어리석었다. 이혼 할거라는 내 말에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하셨고, 당시 나는 같은 여자로서 내 편에 더 서주시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팔은 안으로만 굽는 법이었다.
집으로 올라와 나와 아이와 그가 함께 쓰던 방에서 그의 물건들을 모조리 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의 옷은 다 꺼내서 3개를 골라 가위로 난도질해 문 밖으로 던져냈다.
다음날 시어머니는
“이 옷 네가 그랬니?”
하셨고 나는
“네”
했다.
다음날 저녁, 시어머니는 내게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기사를 메시지로 보내왔다.
그가 잠들면 남편의 휴대폰도 더 뒤졌다. 다른 여자는 없는지. 내가 모르는 진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 했다.
그의 휴대폰 안에서 시어머니가 그에게 보낸 메시지에는 상간녀와의 법률조언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여자로서의 일말의 믿음도 모두 버렸고,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저한테는 상간녀 법률 기사 내용 안 주시나요. 분노조절은 제가 할게 아니라 성적욕구조절, 도덕교육은 ㅇㅇ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불륜이 시어머니의 잘못은 아니지만 저한테 분노조절 이야기 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의 차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자잘한 물건들의 용도를 따졌다. 이 물건이 그의 차 안에 있어도 될 법한 물건인지에 대한 적합성도 따졌다.
그의 물건들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용도도, 적합성도 알기 어려웠다.
약 20개의 묶음 중 몇 개만 꺼내서 쓰고, 약 16개 정도가 그대로 묶여있던.
작은 약박스처럼 보이는데 바깥 그림에는 종합과일세트 같은 과일그림이 있는.
표시된 모든 글자가 영어인지 스페니쉬인지 불어인지 알 수 없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제목처럼 쓰인 글자를 검색해 보니 발기부전제였다.
이렇게 나는 증거들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