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나는 머리를 깎으러 간다.
어릴 때는 멋진 헤어스타일을 하기 위해 잘하는 미용실을 찾아 꽤 오래 방황했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면 미용사가 발라주는 제품을 유심히 보며, 손끝을 훔쳐보듯 스타일링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다 옛날 일이다.
멋을 부리는 일에도 권태를 느끼는 중년의 나는 이제 딱 한 가지 스타일만 고수한다. 오랜 시간 다져진 관계로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아는 미용실을 찾아가고, 손질이 끝나면 외출할 일 없다는 핑계를 대며 발라주겠다는 에센스도 마다한 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꼬꼬마 시절에는 머리 깎는 일이 좋았다. 주말이면 엄마가 쥐여준 5천 원을 들고 동네 이발소에 갔다. 면도하는 손님, 얼굴 마사지를 받는 손님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였다. 이발사 아저씨의 무심한 손길과, 마무리로 해주던 구레나룻과 뒷덜미 면도는 늘 최고였다.
가끔은 커터칼로 면도를 해주는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다. 이제 그런 풍경은 보기 어렵다. 얼굴 마사지는 사라졌고, 면도는 따로 값을 치러야 하는 고급 서비스가 됐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나와 미용사 사이의 거리다. 예전에는 스몰토크에 성실히 대답했지만, 이제는 단답으로 응한다. 그들도 그걸 알고, 말없이 머리만 잘라준다. 그렇게 nn년 동안 머리를 깎았다.
그날도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머리 깎는 날이었다. 늘 가던 미용실, 늘 하던 대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피곤했던 나는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감고 있었는데, 불현듯 눈썹에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미용사가 트리머로 눈썹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래 눈썹도 다듬어 주던가.
아니, 왜 갑자기…
내 눈썹이 그렇게 자유분방했나.
아무 일 없다는 듯 머리 손질은 끝났고,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미용실을 나섰다.
그 뒤로 미용사는 내 눈썹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날의 일이 실제였는지, 기억의 오류가 만들어낸 장면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물어봤다.
“혹시 여기서 눈썹도 깎아주시나요?”
잠시 놀란 듯하던 미용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 원하시면 손질해 드려요.”
그날, 나는 또 한 번 눈썹을 정리했다.
뒤늦게 알아차린 미용실 서비스는 그렇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