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세계여행, 함께 지구를 거닐다_20151010
옛 것으로 보이는 정장을 차려 입은 두 명의 여인과 중절모를 멋지게 눌러쓴 신사가 보였다. 짐작건대 2차 세계 대전 시절의 옷차림처럼 보였고, 주변을 둘러보니 조명에 마이크며 이리저리 분주한 스텝들이 눈에 들어왔다.
프라하의 구시가지에서 진행되는 영화 촬영 현장이었다. 스텝의 대부분이 중국사람으로 중국 영화인 듯 싶었다. 혹시나 아는 유명한 배우가 있을까 하여 한참을 쳐다 보았지만 아쉽게도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카페로 보이는 건물의 1층에는 감독의 스탠바이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는 배우들이 있었다. 2층에는 본인의 씬을 기다리는 단역 배우 2명이 독일군 복장을 하고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촬영과는 별개로 영화에 나온다는 사실이 그들을 설레게 하는 것 같았다.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서 관광객들에게 잠시 조용해달라는 스텝들의 요청이 들렸다.
Ready, Action!
감독의 목소리가 메가폰을 통해 들렸다. 우렁찬 스탠바이와 함께 갑자기 나도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만큼 오래된 돌로 만들어진 길, 바로크부터 르네상스 이어지는 건축 양식의 교과서와도 같은 건물들, 그 오랜 시간을 그대로 흡수한 것 같은 틴(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성당, 보헤미안의 시대로 이어지는 듯한 까를교, 그리고 다리 위에서 들리는 거리 악사의 연주와 키스하는 연인들까지.
내가 있는 지금 이 곳의 모든 것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근사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은 단연 나였다. 천천히 구시가지 골목 골목을 산책하고, 하염없이 블타바 강을 바라보기도 하고, 수 백 년이 된 양조장에서 신선하게 뽑아낸 흑맥주를 음미하기도 했다. 여행의 하루 하루가 모든 씬이고 주인공이 나란 생각이 들자, 어제의 씬도 오늘의 컷도 내일의 촬영도 모두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