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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Feb 18. 2016

수천 개의 파고다와 마주하고 싶다면

지구를 거닐다_20150704

땡볕 아래에서도 현지인 가이드는 미국인 커플을 위해 이것저것 설명하기 바쁘다. 두 명의 서양 청년은 무섭지도 않은지 탑 난간 끝에 번갈아 올라가며 연신 서로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지금은 해가 지는 무렵이고, 눈 앞에는 수천 개의 파고다가 있다. 여기는 미얀마 바간, 결국 이 곳에 왔다.

하늘이 점점 붉어지면서 수 많은 파고다의 낡은 벽돌은 그 빛을 담아 더 붉게 물든다. 저 멀리 지평선 끝, 어디가 시작이고 어딘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황홀한 풍경 아래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몽롱하다. 여의도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야근을 하던 시절, 미얀마는 상상 속에만 있던 나라였다. 30시간을 넘게 날아가는 아르헨티나보다, 북쪽 끝에 아직은 생소한 아이슬란드보다, 미얀마는 어찌 보면 내게 더 먼 나라였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몰랐고, 무얼 먹는지 몰랐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도통 몰랐다. 우연히 tv에서 보게 된 여행 다큐멘터리에서 미얀마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나, 심리적 거리감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 갈 수 있으려나 싶은 나라였고, 미얀마에 간다는 건 꿈같은 소리였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한 지 불과 70일 만에 미얀마는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치마처럼 생긴 론지(전통 의상)를 입고 일하는 남성들이 있고, 얼굴에 타나카를 곱게 바른 채로 순수한 미소를 띠는 여성들이 살며, 시간이 날 때면 언제든 사원에 들려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곳. 상상만 했던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지니 기분 좋은 현실이구나 싶다가도, 수 천 개의 파고다를 눈 앞에 마주하니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다시 꿈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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