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거닐다_20160227
어쩌다 보니 여름으로 본격 접어드는 동남아를,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7월의 인도를,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도 갈증이 풀리지 않는 8월의 스리랑카를 거쳐왔다. 치밀한 준비 없이 루트를 짠 탓에 하필 가장 더울 때, 덥다는 나라들만 잔뜩 지나게끔 했더라. 그래서 앞으로 여행하면서 더 이상 더운 나라를 만나는 것도 쉽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리우데자네이루는 지금까지 느꼈던 더위와는 차원이 다른 뜨거움을 느끼게 했다. 여태껏 겪었던 더위는 그래도 한 낮에 길거리를 돌아다닐만한 숨구멍은 만들어 줬구나 싶을 정도였다.
아침 9시에 이미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그래서인가 브라질 남자들은 시내 중심가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상의를 벗고 다닌다. 속옷만 한 핫팬츠와 가슴과 배를 훤히 드러내는 민소매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입고 다니는 일상복 차림이다. 그저께는 시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현지인에게 설명을 듣는 프리워킹투어에 참여했다. 땡볕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밖을 돌아다니다 보니 투어가 끝날 때쯤 온몸이 땀에 절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건지, 투어에 지쳐 다크서클이 진하게 깔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몇 시간만에 얼굴이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렸다. 급한 마음에 눈 앞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일단 맥주부터 시켰다.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원샷하고 나니 아직 가지도 않은 리우의 예수상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황홀했다.
어제 점심에는 더위를 피해 이파네마 해변에 놀러 갔다. 바닷가에 가면 그나마 시원하겠지 싶었지만, 리우의 해변은 코파카바나(Copacabana)나 이파네마(Ipanema)나 그늘 하나 없는 곳이었다. 한 낮의 더위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구워질 듯한 열기에 바짝 마른 모래사장은 뜨겁다 못해 따가웠고, 맨 발로 걷다가는 발바닥이 타버릴 것 같았다. 어지러울 정도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현지인들은 정면으로 태양을 보며 태닝을 즐기고 심지어 축구도 했다. 신기한 건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자를 써서 햇빛을 가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온몸이 태양에 타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작다 하는 비키니는 여기에 죄다 모인 풍경이었다. 베트남의 해변에서 긴 옷과 모자로 몸을 최대한 가리면서 햇빛을 피했던 사람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해변을 걷다 보니 리우의 삼바 카니발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더운 날씨에 온 몸을 신나게 흔들어대는 격정적인 삼바를 추다니. 미칠 듯이 뜨거운 날씨에도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연신 축구공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있다니. 브라질 사람들은 더울 때는 더 뜨겁게, 태양은 피하지 않고 맞서며 즐기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결국 리우의 해변에서 한 시간만에 넉다운당했다. 근처 주스 가게로 피신해 브라질에서만 난다는 아사히베리 주스를 시켰다. 얼음을 잔뜩 넣어 셔벗처럼 되직하게 갈아 만든 아사히베리 주스를 탈탈 털어 마시고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 두 볼은 열기로 인해 빨갛게 상기됐고 팔과 다리는 파도에 휩쓸려 올라온 미역처럼 축 늘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에어컨이 있는 숙소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건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뜨거움이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곳, 브라질에 내가 오긴 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