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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Jul 23. 2016

실은 많이 두려워

지구를 거닐다_20160720

무기력한 아침이었다. 아침을 먹으러 나가자는 남편의 말에도 나는 한동안 침대에 갇혀버린 것 마냥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 어젯밤, 결코 꾸고 싶지 않았던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예전 기억 따위는 다 잊은 듯, 아니 과거의 일 따위 겪은 적 없다는 듯 편안해 보였다. 꿈에서의 그 날은 이전에 다녔던 회사를 복직하는 날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지만, 꿈속의 나는 퇴사자가 아닌 휴직자 신분이었다. 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며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꽤나 만족하는 내가 보였다.

얼마 전에는 헤드헌터에게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제의를 받은 곳은 조건이 좋은 기업이었다. 물론 헤드헌터는 내가 퇴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을 테고, 나뿐만이 아닌 비슷한 경력, 유사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수많은 후보자들에게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아무나에게 보냈을 메일이었다 하더라도 그 와중에 나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는 초라한 나를 발견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에서조차 복직할 수도 없는 전 직장에 다시 들어가는 꿈을 꿨으니, 두렵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저 내밀한 곳에서 혼자만 끙끙 앓아온 고민을 꿈을 통해 적나라하게 토해냈으니, 오늘 아침은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대면하는 순간과도 같았다. 그래서 힘이 빠졌고, 나는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싶어 침대 밑으로 꺼져 버리고 싶었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전보다 단단해진 나를 기대했건만, 여전히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내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돌아갈 때가 정해지고 나자, 나는 돌아가서 마주할 현실이 점차 두려워지고 있다. 아닌 척, 센척하며 씩씩하게 돌아가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쿨한 부류가 아니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몇몇 이들이 보여준 확신에 찬 표정과 다부진 포부가 내게도 있길 바랐지만,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갈등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래, 까짓것 확 터놓고 인정해버리자. 실은 바들바들 떨고 있다고. 저 깊은 무의식에서조차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돌아간 뒤에 당분간은 백수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야 떠나는 순간부터 각오하고 벌린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까 걱정이 되고, 하고 싶을 일을 계속 구하지 못할까 봐 염려되고, 그러다 보면 좀 더 쉬운 길을 택해 전과 비슷한 삶을 반복할까 가슴을 치고 있고, 그래서 결국에는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삶을 되풀이할까 봐 나는 많이 두렵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통제 불능한 무의식이 아닌, 통제 가능한 의식의 세계에서 그동안 차근차근 맷집을 다져왔다는 사실일 게다. 긴 여행을 하며 별의별 일을 겪었어도 타고난 작은 심장인 나는 끝까지 강심장으로 거듭나지는 못했다. 대신 전보다 마음의 맷집이 단단해졌다. 퍽퍽한 현실로 돌아가게 되면, 어떤 날은 제법 세진 맷집에도 불구하고 넉다운될 때까지 얻어터져 휘청거리는 날도 있을 거다. 그럴수록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로 했다. 결코 무너지 듯 하루를 살지는 않을 거라고.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삶 대신, 스스로 타협하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겠다고. 인생이 길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겠다고. 중요한 결정에는 타인의 입김 대신 나의 고집이 중심을 잡을 것이라고. 의미 있는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을 살겠다고. 어느 밤 의도치 않았던 안정 속에서 편안하게 웃고 있는 나를 꿈에서 만나더라도, 다시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면 그건 한낱 꿈일 뿐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는 내가 되겠다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스스로를 매질하며 더욱 맷집을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그때의 절실함을 꾸역꾸역 반추하며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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