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거닐다_2015년 비 오던 어느 날 미얀마 양곤에서
이전의 여행에서 여행 중 비가 내릴 때 나는 그게 너무 속상했다.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잡은 일정인데 비가 오다니. 운도 참 없지라며 날씨를 탓했다. 비 때문에 일정을 급히 수정하는 것이 싫고, 흐린 날씨 탓에 원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특히나 반곱슬인 머리가 습기 때문에 부스스해져 궂은 날씨보다 내 얼굴이 더 우중충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는 애써 짜 놓은 나의 여행을 김 빠지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 오는 하루를 즐기게 되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동할 때를 제외하면 내리는 빗줄기는 꽤나 근사했다. 비 오는 아침 테라스에서 즐기는 모닝커피에서는 유난히 짙은 커피 향이 났다. 촉촉하게 젖은 숲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걷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느지막이 잠이 깨면, 다리 사이에 침대보를 둘둘 말고는 도미토리의 다른 여행자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뭔가 여유로웠다. 가벼운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고 나가게 되었고, 버스나 기차 이동 중 내리는 비를 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기쁨을 깨달았다. 갑자기 내린 폭우를 피해 몸을 숨긴 곳이 현지인만 아는 도서관이나 카페인 경우는, 때마침 내린 비가 고마웠다. 비와 함께 마시는 술이 나를 가장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당연했다. 비가 많이 와서 가기 힘든 곳은 내일 가면 그만이었다. 여행 중 만난 비도, 결국 소중한 순간이자 오늘을 더 특별하게 하는 선물임을 서른셋, 긴 여행을 떠나고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