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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Apr 05. 2016

결국, 나의 구원은 엄마

지구를 거닐다_20160324

머리가 무겁다. 콧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계속해서 마른기침이 난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재채기가 튀어나온다. 조그만 언덕을 오를 때에도 숨이 턱턱 막힌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심장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평균 해발 3,800m인 이 곳에서 고산병이란 놈은 조용히 찾아왔다 이내 사라진 듯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끈질기게 머물면서 조금 방심했다 싶으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기운없는 몸을 겨우 추스르고 라파즈에서 우유니 사막으로 향했다. 왠지 그곳에 가면 이 지긋지긋한 고산병도 깨끗이 나을 것만 같았다. 몸은 아프더라도 적어도 마음만은 나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우유니에 도착한 첫날, 잠깐의 휴식 후 선셋을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늘도, 태양도, 구름도, 달도 모두 두 개가 되었던 하얀 우유니를 만났다. 맑고 투영한 소금물이 발목까지 찰랑거렸고, 소금 바다가 찰랑거릴 때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태양도 흔들거렸다. 하늘의 수줍음이 땅까지 미친 곳에서 두 발아래 놓인 구름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이대로 시간이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니는 존재 자체가 축복인 곳이었다.


해질녘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을 본 대가일까. 다음날부터 나의 컨디션은 최악으로 치달아갔다.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고 숨은 계속 가빠왔다. 감기 몸살이 걸린 것처럼 기력이 없으면서도 온 몸이 저릿저릿했다. 콧 속이 바짝 말라 따끔거렸고 코를 풀면 피가 묻어 나왔다. 천성적으로 약한 나의 기관지는 건조한 이 곳의 기후 탓에 바싹 말라갔다. 일어설 때마다 빈혈이 온 듯 어지러웠고 나는 끊임없이 휘청거렸다. 약을 먹기 위해서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다행히 시장 한편에서 맑은 빛깔의 국물 음식을 찾았다. 소고기인지 라마 고기인지 정확히 모를 고기를 우려낸 육수에 찹쌀 비슷한 쌀을 말고 감자 몇 덩이를 곁들어 내는 음식이었다. 힘겹게 한 숟갈을 뜨니 갈비탕 맛이 났다. 고기는 질겼지만 불은 쌀은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국밥처럼 호로록 넘어갔다. 한 숟갈 한 숟갈 국물을 뜰 때마다 가슴으로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반을 먹고 나니 이제야 살겠다 싶어 졌다.


그리고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다. 소고기와 무를 아낌없이 넣어 진하게 우려낸 소고기 뭇국을 끓여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바쁜 아침 그 귀찮은 국을 어느새 끓였는지 늘 아침을 먹고 가라며 챙겨주던 엄마였다. 엄마가 갓 만든 겉절이를 소고기 뭇국에 올려먹으면 쌀쌀한 날에도 속이 든든했다. 멸치를 한 움큼 가득 넣어 육수를 내린 후 묵은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 주던 콩나물국도 먹고 싶어 졌다. 결혼 후 내가 출근해 있는 틈을 타 신혼집 냉장고에 몰래 채워 놓고 간 엄마의 묵은지도 떠올랐다. 거기엔 묵은지 말고도 깍두기와 멸치 볶음과 이것저것 직접 만든 밑반찬도 있었다. 얼마나 가득 주고 갔는지 그 묵은지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가 않았다.


몸이 아프다는 한 마디만 뱉으면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엄마의 모든 음식이 머릿속을 스쳤다. 결혼하고 아무리 흉내 내도 따라 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모든 손맛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뜨끈한 국물을 마지막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우걱우걱 들이키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아플 때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은 엄마라는 것을. 34살이나 먹고도, 결혼도 했으면서도,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직장도 그만두고 씩씩하게 여행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몸이 아프니 가장 생각나는 이름은 엄마라는 것을. 무뚝뚝한 딸이어도, 얼굴 보면 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못된 딸이어도, 우유니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나의 구원은 결국 엄마였다.


해질녘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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