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혜성 Sep 08. 2016

그녀의 하루가 최악이 아니었기를...

지구를 거닐다_20150508

치앙마이에 있는 도이수텝(Doi Suthep) 사원에 가는 날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는 주섬 주섬 사진기와 물병을 챙겨 쏭태우가 모여 있는 시내의 대로변으로 발을 옮겼다. 쏭태우는 택시와 버스의 중간 개념으로, 미니 트럭처럼 생긴 차에 다른 손님과 합승하는 대신 택시보다는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언덕이 많은 치앙마이에서 특히 발달한 교통수단으로, 때로는 현지인 때로는 여행자와 동승하며 얻는 재미가 꽤나 쏠쏠한 탈것이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빈 쏭태우 앞에서 기사와 흥정을 시작했다. 나는 미간에 힘을 준 채 호락호락한 여행자는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는 도이수텝에 가는 비용을 물었다. 기사 아저씨는 8명의 손님이 모이면, 원하는 가격에 도이수텝 사원 바로 앞까지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일은 쉽게 풀리는 듯했다. 도이수텝은 워낙 유명한 사원이라 동행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나와 남편은 쏭태우 앞 간이 의자에 앉아 다른 손님을 기다렸다.


5분쯤 지났을까. 4명의 중국 여행자가 쏭태우를 향해 걸어왔다. 4명 모두 늘씬한 미인이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꾸미고 있었다. 손에는 하나같이 명품백을 들고 있었다. 목이 늘어난 흰색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는 운동화를 신고 나온 나와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선크림 위에 비비크림이라도 바르고 나올걸 그랬나 싶었지만, 무더운 날씨에 얼굴에 무언가를 덧바를 생각을 하니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나와 남편은 2명만 더 모이면 도이수텝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쏭태우 뒷 좌석


이번에는 10분쯤 지났을까. 한 커플이 우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50대인지 60대인지 확실치 않은 중년의 서양 남자와, 나이에 맞지 않는 진한 화장으로 앳된 얼굴을 가린 여성이었다. 남성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으며, 여성은 150센티가 약간 넘을 정도의 왜소한 체격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다. 사실 그 커플은 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커플의 유형이었다. 나이 든 서양 남자가 태국에 여행 온 후, 그가 머무는 동안 젊은 현지 여성을 사귀고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형태의 계약 만남이었다. 안타깝게도 태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여성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8명이 모두 모였으니 곧 도이수텝으로 출발하려는 찰나, 서양 남자는 기사에게 차비가 비싸다며 짧은 영어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자기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자, 현지인 여성에게 차비를 깎으라고 추궁했다. 남자는 여자와 기사를 번갈아보며 계속해서 화를 냈고, 기사가 외국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지 여성은 서양 남성과 현지인 기사 사이에서 매우 난처해 보였지만, 그녀는 남자를 대신해 계속해서 기사와 태국어로 얘기를 나눴다. 결국 우리는 처음에 들었던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에 도이수텝으로 향했다. 차비를 아꼈지만 그다지 유쾌한 거래는 아니었다.


그는 낮아진 차비에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쏭태우에 올라탄 후 계속해서 그녀의 볼과 입술에 뽀뽀를 해댔다. 좌우로 4명씩 마주하고는 어깨를 대고 앉은 쏭태우의 뒷 좌석에서, 그는 함께 탄 6명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로 스킨십을 이어갔다. 여자는 같이 탄 사람들을 의식해 그만하라며 손으로 남자를 밀어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났다는 듯 남자의 기분을 살피며 남자를 달랬고, 이 둘의 불편한 스킨십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차 안에서 마주 앉아 본 여자는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앳되어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나머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듯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로 그가 기분 나빠하지 않는 선까지 줄타기를 하듯 그의 손을 끊임없이 밀쳐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혹여나 민망해하지는 않을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창 밖으로 시선을 두었다.


이제야 다른 손님이 눈에 들어왔는지 서양 남자는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본인은 그리스 사람이고 태국으로 휴가를 왔으며, 옆에 앉은 여성은 자신의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가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끝으로 휴가가 끝나 곧 돌아간다며 매우 아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누가 봐도 순수한 여자 친구는 아닌 것 같았지만, 차라리 그녀가 진짜 여자 친구이기를 바랐다. 그는 동행한 사람들에게 꼬치꼬치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세계 여행 중이며 1년 이상 여행할 계획임을 말하게 되었다. 중국 여행자 역시 그들의 태국여행 일정을 털어놓았다. 그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아 짤막한 대답을 뱉어냈지만, 그럴수록 그는 이것저것 캐물어댔다. 아무래도 눈치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대화를 하면서도 한쪽 손으로는 끊임없이 여자의 허리와 다리를 만지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배려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좁은 쏭태우 뒷 칸에서 그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는 내내 그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여행을 즐기던 4명의 젊은 여성들과, 사랑하는 남편과 세계 여행을 다닌다는 나와, 어쩔 줄 몰라하는 여성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녀를 만졌던 남자 사이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쏭태우를 타고 가는 시간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졌던 나처럼 그녀도 그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느끼진 않았을까. 그녀가 그 자리를 난처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나의 과한 참견은 아니었을까. 시내 골목을 달리고 언덕을 올라 우리는 사원에 도착했다. 그와 그녀는 재빨리 사원으로 입장했고 나올 때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도이수텝을 천천히 돌아보는 동안, 만원도 되지 않는 쏭태우 차비가 비싸다며 노발대발했던 그가 떠올랐다. 기사와 여자를 닦달한 끝에 천 원 남짓한 돈을 깎는 데 성공한 그였다. 그 돈이 그렇게 아까웠던 그는 젊고 어린 태국 현지 여성을 만나는 데는 얼마를 낸 것일까.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돈은 그렇게나 아까워했던 그이지만, 본인이 사는 나라보다 형편이 어려운 나라의 어린 여자를 돈으로 유혹할 때는 그 값이 싸다며 쉽게 지갑을 열지는 않았을까. 그에게 더 싼 것은 무엇이고, 더 비싼 것은 무엇이었을까. 섣부른 판단으로 그녀를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사람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진절머리가 났고, 그 여자를 자신의 소유물 마냥 다뤘던 그 남자의 태도에 나까지 불쾌했을 뿐이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3일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치앙마이 구시가지 한복판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똑같은 옷차림에 똑같이 짙은 화장이었다. 그녀의 주변에 일행은 없어 보였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루한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고, 간간히 하품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때 도이수텝에 함께 갔던 서양 남자를 기다리는 것일까. 혹은 새로운 누군가를 찾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가족이나 친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녀가 기다리는 이가 누구이던지 그녀의 오늘이 최악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녀의 내일이 오늘보다 나은 하루가 되기를 기도했다.

도이수텝에서 기도를 드리는 엄마와 아들





사랑하는 남편과 지구 어딘가에서 일상같은 여행을 하며 지냈습니다. 
남들보다 느린 시간을 살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끄적거립니다.
1년 3개월간 길 위의 소소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우리 이 곳에서도 만나요.

https://www.facebook.com/hyeseongj

https://www.facebook.com/1yearholiday


매거진의 이전글 어렵다 빨래, 여행이 일상이 되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