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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Jul 16. 2020

한국에서의 나

번아웃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학교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지만 대학을 가게 된다면 디자인과를 가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미술을 하고 싶다고 설득했지만 예체능을 하기에 그다지 넉넉한 집은 아니었다. 게다가 하나 있는 오빠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미술 대회에서 종종 상을 받곤 했고 둘 다 시키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찍 철이 든 오빠는 진작에 본인 진로를 건축학과로 정했고 나는 끝까지 내 주장만 했다. 내 설득에 부모님은 나를 미술학원에 보내 주셨고 디자인학과에 갔다. 학교에서도 열심히 하고 졸업 전부터 인턴 생활을 하며 열심히 꿈을 향해 매진했었다.



27살이 되는 어느 날, 일을 시작한 지도 만 3년 4년 차가 되어가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힘든 프로젝트가 있어 일주일을 밤을 새우고 택시를 타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며, 택시 안에서 토를 했다. 당연히 택시기사님은 는 술에 취해서 택시에 오른 취객 1로 보였을 것이고 매우 화가 나셨을 것이다. 나는 연신 사과를 하며 치우며 “기사님, 제가요 술은 먹은 거 정말 아니고 일하느라 잠을 못 자서 갑자기 차를 타서 그래요 죄송합니다”를 연신 내뱉으며 치웠다. 택시기사님은 좀 짜증 나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나를 타박하였으나 심하진 않았다. 사실 뭐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 처량했다. 나는 꿈을 위해 달리고 소원대로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행복하지 않다니, 게다가 목표를 향해 긴 터널을 빠져나왔는데 터널 뒤엔 아무것도 없이 또 다른 터널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잠시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볼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20년 가까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부터 쭉 한 가지 일만 생각했기에 나 자신이 이거 외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같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회사를 그만두면 소득도 없다. 무작정 놀면서 다음을 생각하기엔 많이 무리가 있었다. 그다음부터 약 3년간은 가방만 들고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슬슬 직업 외에 찾을 수 있는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버는 돈을 족족 해외여행에 말 그대로 탕진하였다. 시작은 가까운 일본을 시작으로 점차 동남아 유럽 등으로 늘려 갔다. 북미는 옛날부터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모아둔 돈을 여행에 사용하고 점차 모으로 쓰고를 반복하였다. 가장 나에게 전환점이 된 여행은 유럽여행이었다.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어느 날 5년이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행 표를 샀다. 한 달 정도 아무 생각하지 않고 돌아다닌 그 시간이 나에게 막연하게 언젠가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거 같다. 그때부터 다양한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에 가끔 “30살 넘고도 영어 공부할 수 있나요?” 하는 글도 달고 스터디 카페 같은 것도 가입했다. 그리고 당시에 이직 역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좀 더 체계가 있고 규모가 있는 회사를 다니는 것도 조직생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하는 것이 스튜디오 개념의 회사를 다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오래 일한 회사를 대표는 좋은 분이셨지만 회사생활 경험 없이 사업부터 하신 분이라 다른 회사와 여러모로 차이가 컸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의 일도 재미가 붙었다. 취미로 여행을 삼으니 회사 다니는 것 역시 즐거웠다. 그 무렵부터는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연봉도 있지만 워라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적어도 일정 이상의 휴가를 보장해 주는 회사를 고르는 것이 기준이 되었다. 중간중간에는 프리랜서로 일 하기도 했다. 비로소 내 직업의 장점을 찾고 내 일이 더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의 어딘가 답답 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답을 찾진 못하고 있으면서 내 삶을 또 열심히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처음엔 건강으로 조금씩 이상이 나오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대로 간다면 나는 번 아웃돼서 사라질 것 같았고 급기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세상은 내 연차와 경력이 쌓여갈수록 나에게 또 다른 능력을 요구했고 모두들 퇴근 후 “자기 계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퇴근 후 자기 계발을 할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떠나기 직전 2014-2015의 한국은 참으로 힘들었다. 적어도 근로자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기업은 좀 더 미국식으로 실적주의 위주로 좀 더 가속화되어가고 있었고 근로자의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고 당시 정부는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기까지 했다. 좀 더 덜 열심히 살아도 되는 세상은 없을까 하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하면서 살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큰 착각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그런 세상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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