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도 어떠한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처음 스웨덴에 오기로 하였을 때는 사실 그다지 진지한 마음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일하고 살아보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내가 너무 여행지로 좋아했던 스웨덴이고 마침 스웨덴 회사에서도 쉽게 일할 기회도 남자친구도 있기에 어쩌면 시작은 조금 쉬웠던 거 같다. 목적이 하나였기에 이별을 하고 싱글로 살아가면서 또한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하나 평생을 사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고 나는 여기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만약 그럴 경우는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지만 이방인이 아니게 살아가야 하는 것 그 모든 게 힘들었다
내가 자라던 동네는 꽤 유학생 친구들이 많았다 특히 내 또래는 조기유학 붐 1세대로 동네에 서울학원이란 유명한 학원도 있었고 해외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길게는 10년 짧게는 1-2년을 살다온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는데 그 나라에 대한 애정도만을 척도로 둔다면 짧게 생활한 쪽들이 더 애정도 높고 또한 아쉬움도 많아 보였다
나 역시 가장 즐거웠던 때는 물어본다면 살기 시작한 1-2년이라고 하겠다 나는 햇수로 5년을 살았고 만으로 4년 정도로 살았다. 처음 1-2년은 적응하기도 바쁘고 해외에서 사는 자부심, 그것도 그 땅에 세금 내면서 한 사람의 몫을 스스로 하며 사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자부심도 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해외취업을 한 것, 그리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써 북유럽에서 일하는 것은 영광이었다. 또한 모든 것이 낯설면서 새로운 것이기에 설렘도 무척이나 컸다. 게다가 한국에 있는 엄마가 우리 딸이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일해요 라며 자랑하고 다니는 것 또한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방문자가 아닌 거주인의 태도로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마주하였고 심지어 거주 1-2년 차에 생각했던 친절 또한 넓은 의미에서 인종차별임을 깨닫고 그들의 친절은 그냥 마냥 좋은 친절이 아닌 자신과 동등하지 보지 않기에 행해지는 친절이라고 깨달아 가는 건 신입시절 남초 회사에서 받아보는 친절이 훗날 그곳에서 여성 임원이나 부장급이 없어서 생기는 친절임을 아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여기에서 현지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도(심지어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나는 그 정도의 재능도 재능을 뛰어넘을 독함도 없는 사람임을 잘 안다) 그들과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임을 알아가는 것은 이방인임을 좋아하던 나도 힘들었다. 어느 사회에서 속해 살면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삶을 즐기는 것은 매우 달랐다. 현지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 중에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방인 인임을 즐기면 어떠냐 나는 그런다고 위로하였지만 그 친구는 소속된 회사가 현지에 없고 또한 언젠가 돌아갈 기약이 있는 삶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재수생과 대입에 성공한 채로 노는 친구와 다른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실제로 유학만 마치고 돌아가려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약이 있이 방문하는 것과 현지인으로 살아가길 준비하는 것은 많이 달랐다
실제로 평생 살아가려면 스웨덴어 역시 피할 수 없다. 물론 많은 스웨덴 회사는 영어를 사용하고 영어만으로도 생활이 충분하지만 10년을 살면서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게다가 나는 가만있어도 이방인임이 티가나는 동양인이기에 더 심했다 예전에 스웨덴에 여행 와서 내가 스웨덴을 좋아하게 된 건 아마도 나는 여름에 여행을 와서인지도 모른다 스웨덴의 여름은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고 백야로 낮도 길다. 나는 그것을 스웨덴의 전부라 생각했다. 하나 막상 살기 시작한 스웨덴은 여름은 찰나처럼 짧고 겨울이 길다. 엄밀히 말하면 봄가을도 겨울 같다 추위보다 사람을 더 지치게 하는 건 매우 짧은 일조량이다 겨울이 되면 오후 2시 반이면 해가 지고 거리엔 사람이 없다 그 겨울과 실제 스웨덴의 삶은 꽤 닮아 있었다
그리고 현지에서 살아가면 아주 현실적인 문제에 시달린다 바로 주거 안정이다. 스웨덴의 임대주택 제도는 꽤 합리적이지만 이방인이 그것을 취득하긴 힘들다 아마도 내가 65세까지 스웨덴에 쭉 산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모기지를 이용하여 집을 사는 것인데 통상적으로 집값의 85%를 대출해주기는 하지만 연봉의 6배까지가 한도다 원룸 스튜디오가 아닌 도심에 지하철이 다니는 안전한 지역에 집을 사는 것은 스웨디시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다. 게다가 높은 월세는 돈을 모으는데 꽤 큰 방해 요소였다. 적지 않은 연봉이었지만 나는 그 불안감으로 인하여 스웨덴에서 일하면서도 종종 한국의 일을 받아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했다. 대충 일하고 덜 일하려고 갔는데 막상 살아가려니 한국에 살던 거보다 두배 세배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웨덴은 왜 그렇게 동거 커플이 많은지도 조금 이해가 되었다 집을 살 때 DSR이나 혹은 렌트이던 두 명이 나눠내면 반값이 되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고 쳐도 돈을 모으는 것도 한국보단 어려운 점이 많았다 우선 은행에 이지가 없고 오히려 은행을 이용하는데 매달 비용을 지불했다.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었는대도 만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빚을 지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도 없는 이 땅에 돈 한 푼 없이 사는 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웠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족에게 SOS를 치지 그러냐 하지만 그 정도의 상황이었던 적도 없거니와 그런 상황에 나를 내몰 만큼 무모하지도 그리고 그렇게 어리광을 부릴 정도로 어리지도 않았다 한 사람의 나로서 오롯이 책임지고 홀로 살아가는 것에 이방인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온 지 1년 정도 되었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면 스웨덴이 그립지도 그렇다고 한국이 너무 좋지도 않다. 그냥 여기는 이래서 좋고 여기는 이래서 싫다 다만 한국에 돌아와 기뻤던 점은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고 비주류가 아니고 30년 넘게 교류하고 쌓아놓은 많은 삶이 남아 있다는 사실 때문에 현재는 그곳이 그다지 그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