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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Apr 14. 2022

호스피스 이야기

죽음을 준비하는 것 또한 인간의 존엄성이다

나는 10여 년 전엔 아빠를 잃었고 재작년 겨울에 엄마를 잃었다. 두 분다 암으로 돌아가셨고 두 분 다 발견하였을 때 4기였다. 정기적으로 하던 개인적인 건강검진도 잡지 못했다. 처음 아빠의 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그때는 호스피스를 권할 때 마치 아빠의 치료와 삶을 포기하는 거 같아서 힘들어도 끝까지 치료에 매달렸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정도는 숨쉬기도 힘들었을 거다. 폐암이었다


엄마는 진단 자체가 췌장이었다. 그리고 4기, 대부분의 췌장암 환자들은 진단이 나오면 거의다 3기나 4기다 사실 췌장은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게다가 전이까지 된다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초반에 항암을 하였는데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항암을 하고 쇠약해진 엄마는 더 이상 치료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국가에서 시범사업으로 호스피스를 활성화하는 것을 알았다.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서 호스피스는 꽤 일반적이다. 그랬기에 나는 좀 더 편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두 번째라 그런지 엄마에게 기적을 바라며 치료를 강행하는 거보다 남은 여생을 더 편안하게 보내는 선택이 좋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셔서 우리집은 알아보니 국가보훈병원에 호스피스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시범사업으로 가정호스피스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정호스피스를 하면 주 1회 의사 선생님이 주 2회 간호사 선생님이 온다.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은 전반적인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치료가 아닌 완화요법을 한다. 완화요법은 치료를 안 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항암이나 적극적인 치료나 생명의 연명하는 기도 삽입 관등을 하지 않는 것이지 통증을 줄이는 용도범위에서는 치료는 진행한다. 어떤 호스피스를 신청하든 처음엔 보호자가 담당 가정의학과 선생님과 외래진료를 봐야 한다. 외래진료 시에는 기존 담당 선생님의 소견서가 있어야 한다. 위 환자는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가 없다는 꽤 슬픈 내용을 담으며 죽음의 존엄성을 위해 권한다. 우리는 종합병원을 가봐서 알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의사와 환자 혹은 보호자가 만나는 시간이 단 2-3분 정도이지만 호스피스 선생님들은 매우 다르다 마주 앉아서 천천히 우리의 이야길 듣는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치료과정이 어땠으며 환자가 어떤지 공감하고 들어준다. 솔직히 그 시간만으로도 참으로 위로가 된다. 그러고 나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할 것인지 아니면 가정 호스피스를 할 것인지 결정한다.


우리는 엄마가 집에 머무르기를 환자 본인이 무척 바라였기에 가정호스피스를 선택했다. 가정호스피스를 선택하면 요청 시에는 환자용 침대로 렌트가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 이동식 산소호흡기 역시 대여가 가능하다. 보통 주 1회 정도 수액을 놓아주시고 적절한 진통제나 처방이 내린다. 게다가 환장의 정신건강을 케어하기 위해 봉사 선생님도 오시고 장례지도사 등 상담 선생님도 오신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환자 보호자의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비용도 아주 저렴하다. 엄마는 원래 걱정이 많아서 보험을 꽤 준비하여 치료에 무리는 없었지만 그것을 차치하고라도 선생님이 한번 방문하는데 몇 천 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보통은 신청을 하면 십만 원의 보증금을 내는데 방문 시에 그 금액을 차감하는 형식이다 약값도 상상 이상으로 저렴하다. 게다가 환자가 이상이 있을 때 24시간 전화통화도 가능하다. 당시엔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어서 암환자들에게 흔하게 나는 열이 났을 때 응급실을 가기 쉽지 않았지만 호스피스 환자로 등록하고는 신속하게 응급치료가 되었다. 선생님들 말씀에 의하면 사실 코로나가 아니라면 조금 더 봉사나 프로그램이 많아서 방문 봉사자가 발마사지 등을 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내가 받았던 건 가족사진을 드리면 그걸 포토북으로 무료로 만들어 주셨다. 엄마는 그걸 보시고 참으로 행복해했다. 생각해보면 일반 암병동에서는 답답한 병실에 있어야 했지만 엄마는 가정호스피스를 하며 답답할 땐 산책도 하고 낮에는 요양사님이 오셔서 말벗과 엄마의 간호도 해 주셨다. 엄마는 오죽하면 그때 행복해하시며 “이렇게라도 딱 일 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삭막한 병원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슬프게도 증세는 호전되지 않고 급기야 엄마는 나날이 배에 복수가 찼다. 사실 복수가 찬다는 건 거의 막바지라고 들었다. 몇 번은 가정호스피스 도중 응급실에 가서 복수를 제거하고 하였다. 솔직히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힘들었다. 담당 선생님은 입원 호스피스를 권하셨다. 그리고 냉정하게 코로나 시국에 가정에서 사망 시에 절차가 더 복잡해진다고도 하셨고 무엇보다 복수나 응급상황 시 대처가 안 되는 이유였다. 엄마는 입원은 좀 싫어하셨지만 설득 후에 입원하게 되었다


사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는 건 가정호스피스보다 더 결정이 힘들었다 정말로 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편견과 다르게 호스피스 병동은 꽤 좋았다 우선 호스피스 병동 역시 충분히 상담을 한 후 입실한다. 그리고 일반 병동에 비해 환자 당 지정 간호사 수도 훨씬 많다 게다가 4인당 1인의 요양사님들이 기저귀를 갈거나 기타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해주셔서 환자는 더 위생적이고 좋은 환경에서 지낸다. 그리고 환자에 맞춰 식사는 물론이고 음악치료나 봉사자님들의 프로그램도 많다 봉사자들이 오셔서 늘 무언갈 해 주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연명치료 외에 모든 케어는 다 해주시고 환자 보호자를 위한 프로그램과 임종 후 심리상담이나 모임도 진행한다. 편견과 다르게 일반병동에서 하루게 다르게 나빠져가던 엄마가 안색이 좋아졌었다 마치 1년은 더 살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의 목표가 하루라도 더 인간다운 존엄성을 누리고 사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환자들은 “정말 편찮으신가?’하실 정도로 안색도 기력도 좋은 부분들도 많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침대가 비어있으면…. 그분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다 봉사자님들도 요양사님들도 간호사 선생님들도 대부분은 매우 친절하시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담당 환자 수가 일반병동보다 적어서인지는 몰라도 훨씬 친절하시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겐 위로가 될 것이다


임종이 다가오면 임종실이라고 불리는 1인실로 옮겨진다 그곳에는 환자가족이 쉴 수 있는 공간도 샤워실도 마련되어있다. 물론 어떤 형태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슬프다. 하지만 치료를 하는 것이 환자가 아닌 보호자의 욕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좋은 곳에서 지내며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나는 엄마의 일로 혹여라도 지인들의 부모님들이 비슷한 일이 있을 때 호스피스를 권하기도 한다. 치료만이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임종을 맞을 준비와 이제는 어머니와 이별한 준비를 하세요라고 해도 사실 그건 잘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과로에 쌓여 힘든 간호사 의사와 사투하며 투병하며 임종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따뜻한 관심 속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코로나 시국이라 미흡한 점도 많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간호부장도 그 부분이 안타깝다고 잘 설명해 주셨다. 만약 그런 룰을 따르지 않고 코로나 환자라로 발생하면 그 환자들은 갈 때가 없기 때문에 이해했다. 혹여나 글을 보는 독자 중에 지금 누군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적었다 누구나 살고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도 있다. 치료만이 아닌 위로도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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