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by Sunny

언젠가부터 난 겨울이 싫어졌다. 하얗게 내린 눈이 녹으면 질퍽하고 검게 변해 온 사방 지저분해지는 것도 싫다. 더위는 얼마만큼 견디겠는데 추운 건 어찌 더 못 참겠다. 미끄러져 다칠까 봐 걸음도 조심 운전도 조심조심 걱정도 많아진다. 옛날 어른들께서 ‘없는 사람들은 여름이 더 낫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나도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동심이 사라져서 인가?


어린 시절, 털 스웨터 입고 엄마가 짜준 털장갑, 털목도리 걸치면 추위가 어디 있냐 했었다. 얼음 위에서 썰매 타기, 눈 오는 날엔 눈을 뭉치다 젖어버린 털장갑에 눈덩이를 달고도 손가락이 빨개지도록 눈사람 만들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던 생각이 난다. 그 추운 날 호호 불며 먹던 군고구마 맛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학교 운동장이나 마을 공터에 물을 얼려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놀다 사 먹는 혓바닥을 데일만큼 뜨거운 어묵 국물의 맛 또한 환상이었다. 요즈음 겨울은 그때와 비교하면 추위도 아닌데, 그 시절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는지 모르겠다.


삼하리는 서울보다, 가까이 구파발보다도 기온이 4~5도가 낮아 훨씬 더 춥다. 삼하리로 이사 온 첫 해, 눈이 많이 내렸다. 아직 렉산이 설치되지 않아 베란다엔 눈이 그대로 쌓였다. 얼마 만에 보는 눈 쌓인 장독대인지, 환성을 질렀다. 어린 시절, 아침에 일어나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여있는 눈을 보고 환호하며 뛰어나갔던 그 하얀 눈이 우리 집 베란다에 소복이 싸여 있는 것이다. 발자국 내기 아까워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리고 ‘우리 집 겨울’이라 이름 붙였다.


삼하리에서의 겨울은 내가 ‘싫다’ 해온 겨울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인다, 음악을 틀고 앞 베란다와 뒷 창을 통해 밖을 본다. 그림 속에 동그마니 김이 나는 찻잔을 든 내가 있다. 추위가 발목을 잡아 나를 들여놓고 밖을 보게 한다. 행복하다. 그 즐거움은 여름에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안락함이다. 난 전원생활 예찬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편안함과 풍광은 도시 아파트에서의 그것과는 정말로 다른 그 무엇이다. 이곳에서 난 겨울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어린 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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