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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Nov 12. 2022

시니어 상담 일기

80세 할머니의 미소

저 멀리 지하철 구파발 역 개찰구 앞에 할머니와 어떤 남자가 서있다. 서로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아닌 것 같다. 가까이 간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누굴 기다리시나 봐요?

저는 서울시 노인종합복지관 시니어 상담가입니다. 잠깐 말씀 좀 나누어도 될까요? 할머니는 웃으며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젊은 청년이었고 할머니의 손자다. 그는 맹인이고, 활동보조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의 아들은 후천적 맹인이고 며느리는 선천적 맹인 이란다. 유전인지 손자도 선천적 맹인. 자손 세 명이 모두 맹인이다.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고 손자도 돌보고 있다 한다. 지금 스물다섯 살 손자의 출근길이고 활동보조인에게 부탁하고 들어가야 해서 일찍 나와 기다리는 중인데, 활동보조인은 일찍 오는 적이 없다며 내심 서운하신 모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니 어쩌겠는가? 기다려야지. 그래도 고맙지~ 하며 웃으신다.     

난, 속으론 많이 당황했지만, 웃으며 담담히 본인의 상황을 얘기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에 “힘드시겠네요~ 어르신도 휴식이 필요하실 텐데 복지관에 다녀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아마, 아들 부부는 일을 나가는 모양이다. 아침에 바쁘게 식사 준비, 활동보조인에게 손주 건네고 집에 가면 청소, 빨래에 살림하느라 다른 건 생각하기 힘들다 하신다. 내가 해 드릴 말씀이 없다. 어르신께선 웃으며 말씀하고 계시다. 모든 걸 받아들이기까지 힘들었을 그 세월을 어찌 내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자손 세 명의 장애인 수당과 기초연금으로 생활하신다며 크게 어렵지는 않다 하시지만, 그게 얼마나 되겠는가. 내 몸 하나도 감당이 어려울 팔십의 고령에 모든 집안일을 해야 하는 어르신의 상황이 많이 안타깝다. 마음속으로 어르신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드리는 일 말고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어 마음이 무거웠다.     


“왜? 지하철은 파업을 하는 거야!!!” 아마 맹인 용 스마트 폰이 있나 보다. 할머니와 말씀을 나누는 내내 스마트 폰만을 만지던 스물다섯 살 손주가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손주를 달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멀어져 가는 내 발걸음만큼 작아져갔다. 아직도 활동보조인은 보이지 않는다.


말씀 나누는 내내 조용히 웃으시던 어르신의 얼굴과 손주를 달래는 말씀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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