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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리 Jan 14. 2019

‘광대’-고희 맞은 소리꾼

마포문화재단 신년음악회 참가

“이번 생은 광대처럼 사는 게 임무인 것 같아요.”


가장 ‘한국적인 대중가수’이며 ‘대중적인 소리꾼’ 장사익(70)이 오는 16일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열리는 ‘마포문화재단 신년 음악회’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흔에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두고 “실패하더라도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원 없이 하고 가는 게 멋진 인생”이라 한다.

올해 초, 평창겨울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연말연시 전국의 주요 공연장에서 이어지는 콘서트가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10가지가 넘는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여섯 살에 늦깎이로 데뷔한 그는 “수많은 직업은 제 길이 아니었을 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1967년 첫 직장은 보험회사였지만 늘 낙원상가 근처에 있는 작곡가 사무실에서 노래를 불렀다. 한때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놓지 않았던 것이 ‘국악’이었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활동할 때가 “세상에서 제일 걱정 없던 시기”라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는대로 살아온 인생”이라 했는데, 가장 힘들 때 국악을 만나면서 늘 대중음악과 조화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그랬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년 전 성대에서 혹이 발견된 것이다.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 1년 가까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한다. 수술 전후의 목소리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그는 “지금부터 사는 삶은 덤”이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원 없이 노래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단다. 광대답다.

“노래 잘하는 가수가 많은데 오래가는 가수가 적은 것은 노래의 의미가 결여됐기 때문이에요. 멋지고 화려해서 인생이 아니라 애환이 있어서 인생이죠. 노래는 그것을 위로하는 겁니다.”

■ 장사익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94년 공연 ‘장사익의 소리판 하늘 가는 길’로 데뷔했다. 지금까지 11장의 앨범을 제작했으며, 100회가 넘는 공연을 해왔다.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대상 국악상(2006), KBS 국악 대상(1995, 1996),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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