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전시기획을 할 때조차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작가연구가 제대로 안 됐었다. 개별적인 작가 연구보다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춰 작품을 최대한 조화롭게 배치해 놓곤 했다.
최근 2022년 12월 11일, 20일, 광주에서 정영창 작가를 만나 그동안의 삶과 예술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작가가 살아낸 삶은 그대로 작품이다.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반추하면서, 부분을 여기에 남긴다.
<몫숨>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요?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연관관계 속에 있다고 봐요. 나무, 사람, 짐승, 물고기 모두 지구를 움직이기 위한 몫을 하려고 태어나 잡혀가고, 배설, 순환의 과정 속에 있어요. 사람도 그 순환의 과정에서 본인의 몫을 하는 것 아닐까요?
예술가에게 있어 미학적 표현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이 아름다움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작가는 극사실주의 화법을 기초로 한 인물화를 선보였다. 이후에는 개념적인 흑백그림 <검은 비>를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채 상무관에의 존치, 철거 논란이 진행 중이다.
작품을 ‘극사실주의’, ‘포토리얼리즘’, ‘즉물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게요. 저의 카셀예술대학교수님은 표현방식이 사실주의적인 동시대작가이기도 했죠.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다 보니 베허(Becher) 부부의 기계, 신즉물주의 사진작업 등 측면을 만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나만의 무언가를 찾으려 했는데 그게 사회적 문제를 작품에 담는 거였어요.
인물화를 그리든 개념적 추상화로 진입했던지간에 표현방식에 있어 ‘먹’을 사용한다고 했다. 2008년 독일 뮨스터 피카소미술관에서 전시했던 <로뎅과의 만남 Auguste Rodin Rendezvous mit Yong-Chang Chung> 연작 (2006년 프랑스 파리 시떼에 머물며 그림)을 보면 몸의 윤곽과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기운사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먹의 번짐이 자연물체를 가져다 놓은 듯 생생하다.
흑백그림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전까지는 기술 습득과정, 이제야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생각할 무렵 나온 거예요. 예전엔 그림 소재를 의도적으로 찾기도 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림을 그리는구나 생각이 들어요
작품 <검은 비>를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머문 뒤셀도르프는 요셉보이스, 백남준이 함께 교류하고 소통하며 급진적 전위미술인 플럭서스 운동을 펼치던 곳이잖아요. 요셉보이스가 말한 사회적 조각이란 형태가 있는 조각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하는 사회적 행위로써의 예술을 말했잖아요.(요셉보이스의 참나무 7000그루와 현무암이 카셀 곳곳에 심어졌다. 보이스는 예술행위란 어떤 내용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저절로 구성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어둡고 음습하고 무섭게 되어 있던 상무관이 <검은 비>로 인해 밝은 공간, 사람들이 쉽게 편안하게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어요.
<검은 비>에 관계된 모든 사회적 행위 또한 회화로서의 예술과 함께 확대된 예술인 것이다. 작가는 예술가의 역할을 자기의 행위로, 작업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임을 명명한다. 두 달 동안의 광주에서의 레지던시 생활을 뒤로한 채 작가는 다시 독일로 떠났다.
그의 예술 여정을 추적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시대, 동시대 예술을 지각(知覺, perception)하는데 일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