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문호이자 철학자, 과학자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왕실고문관이었던 그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는 20대 중반의 청년 괴테에게 이탈리아 여행을 권유했다.
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괴테는 이탈리아 대신 바이마르로 옮겨가 정치권에 몸을 담게 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정치인으로 변신해 뭇사람들의 찬탄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지만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점점 무뎌져 갔고 작가로서의 명성도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괴테는 자신의 37세 생일날에 별다른 짐도 없이 역마차에 몸을 싣고 훌쩍 이탈리아로 떠났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푸른 숲,박영구 옮김, 1998)
괴테는 1786년부터 1788년까지 약 2년간의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통해 그의 내면적 성장은 물론 예술관, 자연관을 정립했다.그랜드 투어는 17세기 중반 무렵 유럽에서 귀족자제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여러 곳을 돌아보며 생생한 역사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교양을 쌓던 ‘위대한 학교’의 일환이었다.
일요일에 ‘영상강국제설치미술제 2023’연계 행사, 예술감독,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아트 투어’에 참여해 전시 전체 공간 열 곳에 펼쳐진 곳곳을 다니면서 새로운 의미의 그랜드 투어가 떠올랐다.
금성관, 나주향교, 서성문, 나주정미소 옛 화남산업 등에 설치된 미술작품들을 관통하는 나주가 지닌 오랜 역사. 이번 예술감독 백종옥의 말처럼 “미술작품들은 그 작품들이 설치된 역사적인 장소들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옛 화남산업 자리에서는 황도복숭아 통조림만 만들던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문을 통과하면 왼편에 소들을 위한 위령비가 있다. 일본군에게 제공할 쇠고기 통조림을 만들기 위해 매일 200~300마리의 소를 도축했다고 한다.작가 하이뚜는 인간들의 전쟁으로 희생된 소를 애도하는 벽화를 폐공장 외벽에 그렸다.
당시 직원들에게 한 달 월급을 소고기 통조림 만들고 난 부산물을 대신 나눠줬던 게 지금의 나주 곰탕이 만들어진 계기라고도 한다.
서성문은 1894년 7월 1일 나주를 점령하려는 동학군과 나주를 지키려는 수성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설치된 김계현의 4m 크기의<앵무새 케이지>, <사람들>은 앵무새가 같은 말을 반복하듯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희생되고 잊히는 익명의 사람들을 은유한다.
나주 정미소에 설치된 이레네 안톤의 거미줄처럼 이어진 스타킹들은 이곳 나주정미소가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주역들이 회의를 하던 장소로서 광주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학생독립운동의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
나오코 토사의 <Moon Flower> 영상에서 또한 천천히 흩어지는 꽃들의 모습이 마치 연약한 이들이 자신을 산화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역사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나주목의 객사였던 금성관에는 강용면의 <온고지신> 작품으로 밥그릇이 설치돼 있다.나주를 방문한 사신과 관리들이 묵었던 객사였던 만큼 나주를 방문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대접하고픈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흐름. 열 개의 탄성>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영산강국제설치미술제 2023은11월 30일까지다. (매일 10시 30분~17:30분)미술작품 속에 녹아 있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역사까지 역사와 예술의 경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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