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슬프게도 그날의 참장 어탕이 참 맛있었다
나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그림 중에서 <장어 마틀로트 La Matelote d'anguilles>를 좋아한다.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왠지 쓸쓸하지만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장어 마틀로트는 장어와 양파, 제철 채소를 넣고 끓인 프랑스식 생선 스튜다.
피카소의 두 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연인인 쟈클린이 피카소를 위해 끓이려고 준비한 〈장어 마틀로트〉의 식재료를 피카소가 그림으로 묘사했다. 신문지 위에 올려진 장어들의 뒤엉킨 몸부림에서 격렬함보다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
프랑스 남부에 정착한 피카소는 예전처럼 흘러넘치는 활력의 삶보다는 노년의 은둔하는 삶을 살며 작업에 몰두했다. 서로 다르지만 생명이 있는 장어, 양파, 제철 채소와 갖은양념들을 냄비에 넣고 뭉근하게 끓여 낸다. 시간이 흐르면 거기엔 피도, 상처도 없다. 평화로움에 길들여진다.
장어 스튜도 인생과 비슷하다. 끓는 냄비처럼 뜨거울 때도 있고, 싸늘하게 식을 때도 있다. 열정이건, 사랑이건 말이다.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냄비 속 장어도 뜨겁기도 차갑기도 했겠지.
서호시장에서 참장어 두 마리를 샀다, 한 마리로는 장어탕, 그리고 또 한 마리는 덮밥을 해야지 싶어서 갯장어 외에 더 필요한 재료를 구입했다.
장어 손질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못 박힌 긴 나무판에 장어 입을 고정시킨 채 장어 몸을 반듯하게 만든 다음 식칼로 목을 정조준해 즉사시켰다. 그런 다음엔 등을 갈라 내장과 단단한 뼈를 제거했다, 피가 줄줄 흐르는 장어는 고통스러워하며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 죽었다.
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 기운을 회복하기에는 장어탕이 좋을 것 같았다. 토막 낸 참장어에 된장과 고춧가루를 풀고 채소와 함께 짧은 시간에 푹고아 장어탕을 만들었다.
다음날엔 나머지 참장어로 참장어덛밥을 만들었다. 손질한 장어에 와인과 소금을 뿌려서 숙성하고,
그동안 물, 간장, 앙파, 매실청 등 넣어 데리야끼 소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데리야끼 소스는 다음부터는 기성 제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장 한 비율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때로는 타협하는 법도 필요하지. 처음부터 너무 다 하려고 말자, 무리하지 말자. 천천히 하나씩 또 하나씩 하자... 추가로 청경채, 부추, 토마토를 살짝 삶아 함께 곁들였다. 장어를 살짝 굽고 데리야끼 소스를 자작하게 부은 다음 소스 맛이 잘 베도록 졸였다. 전체적으로 맛이 좀 짰다. 맛이 좀 짜면 어때. 곁들임 채소와 밥을 듬뿍 곁들이니 제법 맛이 괜찮아졌다.
격렬한 몸짓의 참 장어의 죽음이 나의 생명이 된다. 생명과 죽음은 하나다.
삶이란 장어의 몸부림과 같은 격정을 조용히 끓여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소멸되어 가는, 사라져 가는 현실의 시간을 산다... 스튜 냄비의 밑바닥처럼 뜨거움을 견디고 살아 내다 보면 소멸은 단지 텅 빔이 아니라 뭉근하게 끓여낸 장어마틀로트의 구수한 맛처럼 새로운 내일이 되는 걸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정말 슬프게도, 그날 참장 어탕도, 그다음 날의 참장어 덮밥도 너무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