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검은색 옷만 입었지만

무작정 회색을 좋아해 본다,. 색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by 일상여행자


양평에 위치한 구하우스 미술관. 검은색과 흰색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을 무작정 좋아해 본다

내가 직장일로 힘들어할 때다. 전화 속 선배 K의 말이다.


“사람들은 말이야

회색을 싫어해

검은색이 아니면 흰색이어야 한다는 거지

검은색이거나 흰색이 거나하면

근데 싸움하자는 거 아니야?


세상은 있잖아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어”


어떤 일 앞에서 직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직면하려면 버틸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검은색과 흰색 ‘사이’의 색인 회색을,... 무작정 회색을 좋아해 볼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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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말레비치<검은색 사각형>(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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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이런 색에 빗대어 보자면 우리, 나와 너의 관계에서도 ‘사이’, 그게 생각처럼, 말처럼 쉽진 않지만 말하자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이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검은색과 흰색은 다른 색이란 걸 인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를 서로 존중하는 태도 그다음에는 연한 회색, 밝은 회색, 어두운 회색, 청아한 회색, 따사로운 회색 등 무수한 회색들을 조화롭게 만들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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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일주일 내내 검은색 옷만 입었다. 때론 원피스, 긴치마, 바지, 긴팔, 반팔 할 것 없이... 검정 색옷들, 유행을 타지 않는 색이기도 하다. 옷의 질감이나 디자인이 다를 뿐 모두 검은색의 옷들이 내게 참 많기도 하다.

모든 빛과 색이 사라진 검은색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군더더기를 버리고 본질에 다다르게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검은색을 주관성보다 객관성이 강한 색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무언가에 대해 감정적으로 정리, 결단이 필요할 때, 몰입이 필요할 때 무의식적으로 검은 색옷들을 입었던 것 같다.

또한 검은색은 침묵의 색이다. 침묵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은 상태일 때 깨달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깊숙이 가라앉아 있음을 기다려 준다. “침착해, 너무 예민할 필요 없어.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검은색과 흰색에서는 명도 대비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검은색을 바탕으로 한 흰색과 회색을 바탕으로 한 흰색의 경우 검은색을 바탕으로 한 흰색이 더 밝아 보인다. 반면에 회색 바탕의 흰색은 좀 더 어두워 보인다. 검은색과 흰색들 모두가 고유한 색인 줄만 알았는데 모든 존재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아름다움도 슬픔도 비롯된다.



말레비치(Kazimir Malevitch)의 그림 중에 <검은 사각형>이 있다. 제목 그대로 캔버스 화면 속 흰 바탕색 위에 검은색 정사각형이 보인다. 어떠한 구체적인 형상도, 주제도 없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 앞에 선 관람자의 감정이다. 말레비치는 우리에게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기울지도 않는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 현실의 형상들이 모두 사라진 텅 빈 상태가 좋다. 텅 비었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올해의 팬톤(Pantone) 컬러 중 하나는 그레이, 회색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세상의 새로운 재편, 불확실한 시대, 무엇보다 필요했던 사회적 융합... 모든 색들을 다 섞으면 진한 회색이 된다. 하지만 검은색과 흰색의 사이에서 유난히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색에 집착하기보다 그 사이의 색들에 마음을 둬본다. 그리고 차츰차츰 나의 색을 찾아야겠다. 나폴레옹은 초록색을 특히 좋아해 그의 주변에 온통 초록색을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다양한 초록 중에서 나는 제이드 그린(Jade green) 색이 좋다. 제이드 그린색 노트를 사볼까?

색에 마음을 담아본다

색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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