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동안 내가 쓴 '형용사'를 수집해봤다

‘뭉개진’, ‘텅 빈’을 썼다, 지우며 깊은 아름다움 향해 나아간다

by 일상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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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페이스북에 1년 전의 나의 오늘, 2년 전의 나의 오늘, 3년 전의 나의 오늘 사진과 글들이 올라왔다. 새삼 반가워 유심히 보다가 문득 심리 형용사에 관심이 생겼다. 심리 형용사는 기쁘다, 슬프다, 반갑다, 즐겁다 등의 주어의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


1인칭 주어 ‘나’는 즐겁다에서 즐겁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즐거운 ‘나’

‘나’이긴 한데 나의 상태가 즐거운 ‘나’이다.


따라서 즐거운은 나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는 심리 형용사가 된다.


비록 짧은 문장들로 표현된 페이스북 글들이지만 내가 자주 쓴 특정 형용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쓰다가 사라진 형용사도 있을 것이다. 익숙하게 쓰던 형용사들, 쓰지 않게 된 형용사들을 보면 당시의 나의 감정적 변화,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질 것 같았다


한 해를 형용사로 정리해보는 새로움이라니..(스스로 재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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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일수록 형용사를 아껴 쓰면 좋다고 한다. 가능하면 다 빼버리라고도 한다


소설가 김훈은 말했다

문장 수업에서 법조문을 텍스트로 삼았다고 한다. 표현하려는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환경이 든 간에 문학적 언어가 되기까지 그만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내 페이스북에 올리는 문장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건 아니지만 문학적 언어라기보다, 그저 그날그날의 중요한 생각들을, 마음들을 나중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편하게 쓰는 일상적 언어이다. 그러다 보니 비문이어도, 형용사가 넘쳐도 스스로 괜찮다고 위안한다


우선 일 년이라라는 시간의 범위를 정한다. 일 년은 내가 일 때문에 머문 경남 통영에서의 시간들이다 첫 글의 시작이 지난해 2020. 10. 16일이다. 10월을 시작으로 그 이후의 월별 형용사들을 모아 본다



2020. 10.

새로운, 매혹적인, 꿈을 꾸는, 창조하는, 강렬한, 발견된, 탐험하는, 사랑스러운, 과감한, 소중한, 깊은, 새로운, 흥미로운, 강렬한, 사로잡는, 직관적인, 아름다운


2020. 11.

푸르른, 특별한, 따듯한, 마음 빼앗긴, 애틋한, 소박한, 익숙한, 멋스러운, 차가운, 조용한, 행복한, 편안한, 아름다운, 홀가분한, 이끌린, 가고 싶은, 역동적인, 섬세한, 부드러운, 변화하는, 향긋한


2020. 12.

맛있는, 물드는, 감미로운, 한가로운, 사랑하는, 끊임없이 내뿜는, 반가운, 새로운, 곰삭은, 조용한, 투명한, 부드러운, 감미로운, 찬란한, 생생한,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2021. 01.

즐거운, 아름다운, 각별한, 쉬어가는, 기쁘게 하는, 즐거운, 나직한, 반복적인, 아름다운


2021. 02.

아름다운, 융숭 깊은, 따듯한, 깨어나는, 위로하는


2021. 04.

편안한, 관조하는, 조용한, 수수한, 담백한, 고소한, 맑은, 아름다운, 순한, 시원한, 새로운, 두근거리는, 순환하는, 고단한, 혼란스러운, 묵직한


2021. 05.

담백한 , 부드러운, 고소한, 쫄깃한, 담백한, 촉촉한, 매력적인, 사랑스러운, 풍부한, 아름다운, 향긋한


2021. 06.

아름다운, 상큼한, 은은한, 편안한, 달큼함, 쫄깃한, 소중한, 투명한, 매콤한, 고즈넉한, 고요한, 오묘한


건물.jpg 수면 위에 건물의 그림자가 비추인다. 내가 쓴 글은 나를 비추는 ‘나’이다


2021. 07.

매혹적인, 허탈한, 고통스러운, 충만한, 기쁜, 격렬한, 싫은, 아름다운, 부조리한, 담담한, 으르렁거리는


2021. 08.

불안스러운, 두려운, 본질적인, 강해질 수 있는, 더듬거리는, 경이로운, 텅 빈, 비현실적인, 붙잡을 수 없는, 의도적인, 뭉개진, 나쁜, 쓰인, 쓸모 있는, 쓸모없는, 회상하는, 차분한, 은은한, 익숙한


2021. 09.

자나 칠 수 있는, 즐거운, 텅 빈, 은은한, 고요한, 한가로운


2021. 10

변화하겠다는, 고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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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아름다운’이란 형용사가 연속적으로 쓰였다. 대신에 8월 한 달 동안에는 불안스러운, 두려운, 뭉개진, 의도적인 등의 형용사가 주로 쓰였다. 그 이후에는 형용사 쓰임이 급격히 줄었다. 이제는 변화하겠다는, 그리고 ‘고유한’이라는 형용사만이 눈에 띈다.


아름다운 것도, 불안한 것도 나의 고유함을 찾아가는 내 삶의 과정 일 뿐이다.

형용사가 급격히 줄었다. 이제 본질만 남았다.


삶의 본질은 우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나를 직면하는 것이 내가 나와 만나는 것이 아픔, 슬픔, 두려울 수 있지만 이런 다음에라야만이 비로소 내 삶이 시작된다.


2020. 10월부터 148일 동안의 나의 형용사들을 수집, 관찰하며 '맞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구나'생각한다. 차곡차곡 쌓일 건 쌓이고 지나갈 것은 지니 갈 것이다


슬픔과 함께, 두려움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불확실성을 감당하며 살아내야 한다. 그 길만이 깊은 아름다움을 향해,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나의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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