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59세, 예술 잡 노매드는 계속된다

'나란 존재의 예술'을 위해 천진난만하게, 꿋꿋하게, 즐겁게

by 일상여행자


뒷모습.jpg 다시, 나 스스로의 모습을 되찾아보려 한다.

두 달 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뒀다. 앞으로 2~3년 동안은 직장 생활을 더 하겠다는 전제하에 세웠던 계획들이 떠올랐다. 아이들 각자가 알아서 한다지만 아이 둘의 결혼자금, 2년 만기 적금, 자동차 할부, 보험료 등 온전히 나 혼자만의 선택이 아닌 절반은 타의에 의한 사임이었기에 미처 이에 대한 대안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되겠지 뭐”라고 말했더니 나에게 늘 현실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K가 ”적어도 두 끼는 먹어야 배가 안 고파. 일단 무조건 건강은 챙겨야 다른 일도 할 거잖아 “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수많은 예술이 존재한다. 나는 우리 각자의 삶도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란 존재의 예술을 위하여, 마찬가지로 그 누군가의 고유한 삶 자체도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기, 이를 통해 경제적인 자유 얻기가 필수다


나는 살면서 유독 진정한 자유와 경제적 독립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1985년 당시만 해도 여성이고 인문학 계열이라 전문적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졸업하고 나면 편히 지내다가 결혼하면 되지라는 말이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돈도 벌면서 꿋꿋하게, 즐겁게, 아름답게 살고 싶다. 지금 내 나이 59세이지만 다시 취준생의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이유다.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나에게 "여성이 일 때문에 혼자서 생활을?"이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다 보니 선택지가 좀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직업이 계기가 되어 나는 늘 1인 가구이다.

살집은 대부분 직장까지 걸어서 5~7분 거리를 선택한다. 10년 이상을 직장생활을 했던 광주에서 혼자 살집을 알아보다가 시내 중심가에 4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인데 거실 하나, 방 셋인 집이 정보지에 매물로 나온 걸 보았다. 이를 보자마자 그 집으로 가서 "바로 계약하시게요"라고 말했더니 먼저 살던 사람이 "조금만 더 천천히 살펴보세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사를 하고 나서 욕실에서 세수를 하려다 보니 무언가 없었다. 세면대가 보이지 않아서 세숫대야를 샀다.

무엇보다 집을 바로 계약한 건 집 임대료에 비해 방이 많아서였다. 책을 충동적으로 자주 사들이는 편이라 집이 좁으면 여기저기 책이 쌓여서 걷기가 불편해졌다. 집 공간 구성에서 일 순위는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다. 방 두 개와 거실을 터서 서재로 사용했다. 사실 서재라고는 하지만 기능적이고 간결한 책장과 책상, 의자만 있는 평범한 공간이다. 단, 의자만은 비스듬히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의 편안함이 있는 가죽 의자를 골랐다.

나는 이곳 서재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뒤늦게 대학원 석사, 그리고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현대미술과 예술 관광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학을 공부했다, 직장일에 필요한 관련 서적들을 더 읽었으며 가끔은 무기력해질 때에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으며 마음의 갈피를 잡곤 했다.

가족 구성원은 네 명이지만 주거지역이 모두 다르다.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멀어서 가족이 모두 함께 만나려면 가족 단톡 방에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고 의사 결정을 한다.

가족들이 '요리는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일반적 통념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일지 모르겠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가족이란 경제의 최소 단위라고 인식한다지만 우리 가족들은 남성이어서, 여성이어서, 아내여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 역할보다는 서로가 '자기다움'을 찾고 지키며, 평생 현역으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는 역할에 충실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1인 가구 비율이 30% 가까이 된다. 1인 가구수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70대 이상이지만, 10년 전에 비해 1인 가구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계층은 50대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마다 '인구 특성별 1인 가구 현황 및 정책대응 연구'를 토대로 1인 가구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듯하다.

2030년이 되면 남자는 둘 중 한 명(47%), 여자는 셋 중 한 명 (30%)이 평생 한 번도 결혼하지 않고 산다고 한다.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볼 때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우리 모두는 1인 가구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 학교를 다닌 곳,, 가족이 있는 곳에 집착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특히 나는 예술을 내 곁에 둘 수 있는 일을 찾아 서울에서 광주, 낯선 통영에서 또 어딘가로, 나의 예술 잡 노매드( Job Nomad) 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발걸음.jpg 세상엔 수많은 예술이 존재한다. 나는 우리 각자의 삶 자체도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잡 노매드를 위해서는 자신의 관심사와 확고한 마음가짐 만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가치관을 공유하고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느슨한 관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어느 날 지인 Y의 집 뒷마당에 오동나무의 작은 씨앗이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아온 오동나무 씨앗을 집 뒤뜰의 나무로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하고 오동나무 씨앗 주변 땅을 고르고 공간을 확보해줬다고 했다. 오동나무라면 연보라색 꽃들, 진한 향기, 저 멀리 숲에 있어도 눈에 띄던 키 큰 나무쯤으로 기억되는데 그 집에 가서 부엌 창을 통해 바라본 뒤뜰 오동나무는...


지인 Y의 집 뒤뜰에 안착한 4살이 아니라 4개월 된 노매드 오동나무, 나도 오동나무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정말이지 4개월밖에 안 됐다고? “


깜짝 놀랄 만큼 키가 컸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대. 저기 오동나무 잎 좀 봐, 마주나기를 하니 저렇게 굵은 빗줄기에도 끄덕 없잖아...”


“오오 그러네!!”


지인 Y 집주인과 노매드 오동나무는 그렇게 함께 살고 있었다.


앞으로는 일이나 직업이 더 이상 사무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나 장소로 제한되지 않을 것 같다. 디지털 노매드(Digital Nomad)로 진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겠다. 원격으로 많은 일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생각해보면 매일의 삶에 대응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즐겁게, 아름답게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을 실천하는 내 삶의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편협하게 보지 않고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 나를 지키며 사는 사는 방식, 아직도 쉽지 않지만 그래야 일하면서 사소한 것들에 실망하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내며, 불쾌해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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