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삶이 더불어 돈으로 완성된다

7만 7천6백80원 신권에 담긴 진심

by 일상여행자


장지갑에 넣어둔 7만 7천6백80원을 아직 쓰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은행에 계좌 해지를 위해 갔다가 은행 직원에게서 받아온 현금이다. 나의 타 은행 계좌에 이체를 하면 수수료가 발행할 수 있으니 마지막 잔액을 현금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은행 영업시간이 오후 3시 30분까지만 이라고 해서 서둘러 은행으로 갔다.

은행 직원은 내게 줄 돈 액수만큼 뭉치돈에서 제일 새돈들을 골라냈다. 5만 원권 1장, 1만 원권 2장, 5천 원권 1장, 1천 원권 2장... 십 원짜리 동전 3개까지 각각의 돈뭉치에서 제일 빳빳하고 좋은걸 골라 은행 봉투에 정성스럽게 넣은 다음 봉투를 나에게 건네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찡했다.


“타 지역으로 가시나 봐요?”

“네에”

“그동안 저희 은행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좋은 기억 많이 담아 가세요”


“감사해요 그럴게요”


사실 은행에 가본 지가 거의 1년 만인 것 같다. 통장을 개설하러 갔었고 이제는 해지하러 간 것이다. 거의 모든 은행일을 이제는 핸드폰 앱이나 전화 상으로 가능하니 대면으로 은행일 볼일이 거의 없다. 지역기관에서 일할 때면 주로 사용하던 통장이 있음에도 일하던 기관의 주거래은행 통장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했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다시 주로 사용하던 통장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계좌 해지를 했던 것이다.


지폐와 동전.jpg


최대한 신권을 모아 모아 주려는 은행 직원의 정성에 마음에 뭉클했던 건 아마 그 전날 나와 친구 R이 나눈 말과 연관되어서 일 것이다.


예술가 친구 R이 내게 말했다.


“ 나는 어떤 큰 일을 할 순 없어. 그런데 빵이 생기면 이웃할머니와 나누고 김치가 맛있으면 또 그걸 이웃과 나누고.. 그럼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 각자가 할 수 있는 따듯함, 상대에 대한 배려가 의외로 많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라는 말이 떠올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따듯함이 ‘무엇’ 일지 생각해봤다


지나가던 길, 구름, 표지판.jpg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중요한 날이면 돈봉투를 건네주시곤 했다. 세뱃돈 봉투, 생일 돈봉투, 어른이 되었을 때도 대학원 논문이 나올 거라고 하자 논문 인쇄비에 보태라고 용돈 봉투를 주셨다. 돈봉투는 언제나 모두 노랗고 얇은 16절 종이봉투였다. 봉투를 건네주실 때마다 내 이름과 함께 한 줄 덕담을 봉투 겉면에 적어 주셨다. 당신이 이름을 적으셨던 건 아마 자녀가 2남 3녀여서 였던 것 같다. 그 봉투 속에는 대부분 구김 하나 없는 신권이 들어 있었다. 빳빳한 신권이기에 더욱 아껴 쓰곤 했다.


그런데 어릴 적 용돈에 대한 기억이 있다.


평일에 집에 있는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왜 학교에 안가?”


“으응~~, 오늘 수학여행 가는날이거든

용돈으로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수학여행 안 갔어”


당시 나는 삼중당이라는 작은 문고판 책을 몇 권이고 사서 방 안에 앉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작가 서머셋 몸(W. Somerset Maugham)의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그의 자전적 소설인 <인간의 굴레 Of Human Bondage>,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쓴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러시아어: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영어: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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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달과 6펜스>는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증권가에서 일하던 평범한 남자 찰스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집마저 떠나 타이티로 떠난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생애를 바탕으로 삼았다. ‘달’은 예술적 이상 ‘6펜스’는 세속적 관습과 물질의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예술에 사로잡힌 스트릭랜드 그리고 고갱은 예술적 이상을 위해 현실적 삶을 내려놨다.


언니가 차근차근 내게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지... 생각해봐 막내딸이 아버지를 더 기쁘게 하는 건 용돈 안 타고 수학여행 안 가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이거 봐 봐 두 손을 모으고 있지) 애교스럽게 미소 지으며 “아버지 저, 수학여행 갈 건데 용돈 좀 주세요오”라고 말하는 거지..."


그러하다


딸아이의 웃는 모습이 아버지에겐 그 어떤 돈의 가치보다 컸겠구나 하는 걸 나중에야 나도 내 딸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돈은 돈으로 끝나지 않는다.

돈 속에 담기는 우리의 삶이 더불어 돈으로 완성된다.

그런 돈은 귀하고도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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