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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May 27. 2022

아기니까 팬티바람 괜찮을까?

지인 중에 전자상거래로 대박 난 사람이 있다.

셀프 인테리어로 구독자가 점점 늘었고 개인이 론칭한 가구 브랜드로 수제 소품 제작과 소형 가구 쪽으로는 일약 스타덤을 형성하고 있다. 혼자서 발주를 넣고 상품을 보내던 수공업에서 점점 소규모 기업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고 머지않아 상장도 가능할 것이다. 허물없이 말하는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SNS 상에서 서로 '좋아요' 버튼을 눌러 줄 수 있는 사이는 된다. 그는 상업과 인디비주얼의 중간쯤에 위치한 다소 정감 있는 SNS를 운영한다. 공동구매가 없는 대부분의 날들은 다복한 가정의 모습을 올리지만 그 모습 중간중간에는 본인들이 제작하고 판매하는 물건들이 소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부분 유아 가구라 내게 쓸모가 딱히 없음에도 가끔은 슬쩍 사고 싶다. 그만큼 감각적이고 모던하며 깔끔하다.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멋들어짐 때문에 팬 층이 두터운데, 간혹 '오늘 육아 끝', '육퇴 후 맥주 한잔' 같은 글이 올라올 때면 공감하고 응원하는 댓글들이 소스라치게 많이 올라온다. 슬쩍 보이는 '좋아요' 숫자는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질투 나냐고?

아니, 전혀. 애초에 나는 SNS로 무언갈 사고 팔 생각이 없고 읽은 책 리뷰를 성실히 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의 만족을 위하여서지, 그와 비교할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으니 시기나 질투는 없다. 괄목할만한 그들의 성장을 보면서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배우기도 하고,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댓글이 달고 싶어 진다.

"바지는 입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의 욕실은 거실만큼 예쁘고 정갈해서 구독자들의 사랑을 특히 많이 받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욕실 사진이 꽤 많이 올라오는데 사진 속엔 자주 아기들이 담겨 있다. 남자 아기들은 대부분 목욕을 하고 있다. 알몸이지만 주요 부위는 드러나지 않도록 교묘하게 가렸다. 처음에는 광고 효과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수록 저건 아니지 싶다.

남의 일이니 섣불리 어쩌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내가 뭐라고 충고를 한단 말인가. '부모가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겠나, 상관 말자' 생각하다가 '아냐, 한마디 붙여볼까?' 하다가 이내 포기한다. 도무지 용기는  난다.


오늘은 세 살짜리 딸아이의 손 씻는 사진을 올렸다. 보자마자 나는 장탄식을 뱉었다. 아이가 팬티바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어려도 저렇게 해도 될까?


이 업체의 모토는 가정적이고 사랑스러우면서 친환경적이다. 색도 대체로 미색, 베이지, 주황, 갈색 등 따뜻하고 안락한 색을 사용한다. 조명도, 벽지도, 바닥재도, 타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입는 옷도 주로 아이보리 계통의 톤 다운된 컬러다. 화려함보다는 베이식 한 매력으로 승부한다. 하지만 팬티바람은 아니다. 사실 아이에게 동의받지 않은 그 어떤 사진도 함부로 올리면 안 되겠지만 심지어 속옷 차림의 사진이라니.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무려 2천 명이나 되는 인플루언서이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딸아이의 속옷 차림을 보고 있는데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을까?


나는 N번방 사건이 불거진 후에 SNS에 거의 도배되다시피 한 딸아이의 사진을 모두 내렸다. 개중에 옆모습이나 뒷모습들은 적당히 남겨두었지만 정면 사진은 모두 감췄고, 오래전에 사용하던 보다 개인적인 계정들에서도 사진을 모두 비공개 처리하였다. 나도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라는 이유로 자는 사진, 수영복 사진 들을 가감 없이 게시하였다. '친구 공개' 였다는 변명을 하고 싶지만 정당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그때는 성인지 감수성이나 초상권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고 무지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것이 왜 심각한 일일 수 있는지, 왜 함부로 한 일 중의 하나인지 알게 되었다. 십수 년 전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는 늘어나고 있고 심각한 수준이며 아이의 얼굴이 아무렇게나 사용돼 돌아다니는 끔찍한 일이 우리에게는 없으리란 법이 없다.


예전에 인터넷 카페에서 한 회원은 자기와 자기 딸의 사진이 홍보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 처리했다는 후기를 남긴 적이 있다. 초상권 침해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서 웬만하면 소중하게 지키길 추천한다.


물론,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잘못이지 자식의 귀여운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잘못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나 '아기라서 속옷 차림으로 올려도 된다'는 생각 자체는 애정의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예전에는 아기를 홀딱 벗겨서 의자에 앉히고 양손에 돌반지를 끼워 사진 찍는 게 유행이었다. 심한 데는 전라의 아기 사진을 사진관 전면에 걸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사진을 거의 안 찍을뿐더러 찍어도 게시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면 생각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기라는 이유로 내 마음대로 사진을 찍고 게시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깝다. 범람하는 미디어 속에 개인의 사생활과 정보가 무분별하게 이용되기 쉬운 요즘은 범법자 탓만 할 수 없다. 나부터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꼭 범죄에 이용되지 않더라도 아이가 커서 이 사실을 알고 언짢아할지도 모른다. 상처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동창과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SNS 친구여서 서로의 안부는 알았지만 이성이다 보니 따로 이야기할 일이 드물었다. 어떤 정보를 묻느라 메신저로 말을 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이미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지만 친구의 딸은 네 살이었다. 딸에게 홀딱 빠진 아빠의 모습이 정겨워서 '너 많이 닮았더라, 귀엽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대뜸 목욕시키는 사진을 보내주었다. 머리는 위로 틀어 올리고 몸에는 비누거품이 묻은 채 서 있는 뒷모습이었다. 하지만 전라(全裸)였다. 귀엽다는 말을 기대했을 테지만 나는 정색하면서 말했다.


"내가 아무리 여자라도 딸의 벗은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주면 안 되지 않을까?"

"에이, 아직 애긴데 어때?"


몇 살까지 아기인 거냐, 아기여도 홀딱 벗은 모습을 타인에게 전송하는 건 안 하는 게 좋겠다, 나도 딸 키우지만 남편이 그런다면 화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그래?' 이후로 말이 없었다.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들을 통해 친구가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길 원했다. 친척에게든 친구에게든 가감 없이 아기들의 벗은 사진을 전송하는 일을 조금씩 줄이게 되길 바랐다. 그래도 친구에게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한 속옷 차림 아기 엄마에게는 차마 입을 못 떼겠다. 그토록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별거 아닌 걸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내 생각이 더 이상하다고 말해버리면 나도 당황하고, 그나마 잘 유지하는 사이인데 멀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못해서 혀만 차고 있는 내가 싫다. 차라리 그 사람이 내 글을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차' 했으면 좋겠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자꾸만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분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킬 수 있는 게 많아질 것이다. 어린이를 곤욕스럽게 하는 어른의 습관은 어른이 먼저 고쳐야 한다. 부디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아기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진을 지워주길 소망한다. 아기라고 아무 사진이나 올리는 것도 폭력임을 알길 바란다.


사랑하는 것이 남아 있는 한 두려움의 여지도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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