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삶의 등불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이 책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by 리다리


그 이름도 유명한 솔제니친을 이제야 만난 것은 나의 불찰이 크다. 죽기 전에 꼭 읽어볼 소설 중 하나라는데 읽어보니 왜인지 알겠다. 읽는 동안 조마조마했지만 덮고 나니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의 감사가 내게도 깃든다.

스탈린 당시 노동 수용소에 죄수로 감금된 이반 데니소비치는 8년째 복역 중이다. 가족에겐 연락이 끊긴 지 오래고 수용소의 생활은 언제나 고되고 위태롭다. 새벽같이 일어나 멀건 죽 한 사발 먹고 일터로 나가면 종일 너무너무 배가 고프다. 어제 숨겨 둔 딱딱한 빵이라도 있으면 다행. 바로 입속으로 직행해도 시원찮지만 이반은 언제 또 굶주리게 될지 몰라 그 빵을 숨긴다.


오늘 하루는 나름대로 괜찮은 하루였다. 어디로 끌려가지도 않았고, 영창에 가지도 않았으며, 두들겨 맞거나 심하게는 죽지 않았다. 게다가 기지를 발휘해 국도 두 그릇 먹었고 다른 사람이 소포로 받은 소시지 일속을 얻기도 했다. 기분 좋은 담배를 빨아들일 약간의 여유도 있었고. 그래서 감사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비록 밤새 추워 오들오들 떨지언정, 행여 몸살기가 돌아도 중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죄수의 몸일지라도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삶, 그것이 그의 하루를 또 한 번 살아있게 한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므로 이반은 행복하다'는 아니다. 뒤표지 그대로 소련 공산주의 지배 권력을 날카롭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추방까지 당한전력을 가진 솔제니친은 정직하고 성실한 장기 복역수이반의 하루를 통해 수용소에서 사는 부랑한 수용자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별다른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많게는 25년씩 형량을 받고, 복역 기간이 끝났음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재복역시키는 행태, 부유한 죄수들은 좀 더 안락한 생활을 하고, 간수들에게 잘 보이면 좀 더 배부른(?) 곳으로 배치되는 부조리 등을 소개하려 했을 것이다. 인권은 유린되고 사람을 극한으로 몰고 가 더 범죄 하게 만드는 비정한 수용소를 비추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반 데니소비치는 범죄 하지 않음으로써 비열한 체제에 반기를 든다. 누구도 해치지 않고 가외의 식량을 벌고자 한다. 한 장의 벽돌을 올리더라도 최선을 다한다. 자기를 위해서만 살지 않고 동료를 위해서 재능을 헌납할 줄 안다. 본인은 신을 슬리퍼가 없지만 동료를 위해서는 기꺼이 만들어주고, 본인이 몰래 숨겨서 만든 연장을 들킬 위험이 있음에도 누구에게나 공짜로 빌려준다. 겨우 얻은 담배 한 개비도 귀가 잘 안 들려서 다른 사람처럼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는 동료에게 선뜻 남겨준다. 읽는 내내 나는 이 남자가 좋았다.


자유와 권리가 억압되지 않은 시공간에 살아가는 나는부끄럽게도 소소한 이익에 열내고 용쓴다. 별다르게 애쓰지 않고도 주어진 모든 감사한 것들을 기뻐하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만 좇느라 허황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세상의 한기를 온몸으로 막아내 본 적도 없으면서 겨울이라 날이 춥네 류의 불평을 입안 가득 넣고 우물쭈물 살아간다. 고전을 읽는 이유가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이 소설이 필요하다. 모쪼록 내게 감사가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그건 누가 쥐여주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보잘것없는 줄칼을 주워 갈고닦아 새로운 연장으로 만들어 그것을 타인을 돕는 데 쓰고 뿌듯해하던 이반 데니소비치를 보면서 새삼 느낀다. 나는 그동안 무엇에 분노하고 어떤 세상을 어떤 실천으로 꿈꿨을까. 부당한 세계를 엿보고 붉어진 것은 오히려 내 뺨이었다.

고전이 삶의 등불이 될 수 있다면, 원하는 이는 이 책부터 읽어야 한다. 올해도 새롭게 ‘고전 북클럽’을 시작하며 어떤 책을 함께 읽을까 고민하다가 마침 책꽂이에 보이는 이 책을 목록에 넣고 먼저 읽어 보자 싶어 주말 하루를 잡았다. 신나게 읽다 책장을 덮으니 희던 해가 어느새 붉게 익었다. 어떤 꾸지람을 흠뻑 듣고났는데 외려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느낌이라서 멍하니 꽤 오래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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