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배 거울을 만난다면!

아이리스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를 읽고.

by 리다리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세면대에 따로 장착된 돌출 거울이 있길래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다. 내 피부 하나하나가 돋보기처럼 자세히 보이는 게 아닌가! 먹은 만큼의 나이를 자랑하듯 주름과 기미가 쓸데없이 자세히 보였다. 집주인에게 물으니 3배 거울이란다. 곧장 불행해졌다. 그렇게 솔직하게 꼭 알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하다 들킨 것처럼 괜히 무안해져 버렸다.

나에게는 고전이 거울 같다. 그런지는 꽤나 오래됐다. 어떤 소설이 그러느냐 물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바다여, 바다여]다. 이 소설은 보통의 거울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3배 거울쯤 되려나.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찰스는 화려했던 연예계와 런던을 떠나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기로 한다. 집은 바닷가 절벽 위에 있었는데 그의 전원생활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고 특히 전 여자 친구 리지와 로시나는 잦은 편지쓰기와 방문으로 집주인은 물론 독자들까지 정신사납게 만든다.

어느 날 찰스는 마을에 내려갔다가 첫사랑 하틀리 피치를 우연히 만났다. 인사를 나누던 중 하틀리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찰스는 그때부터 광포한 애정을 쏟아붓기 시작하고 하틀리의 의사에는 아랑곳없이 남편 벤으로부터 그를 구하겠다 다짐하고 실행에 옮긴다. 급기야 하틀리를 감금하기까지에 이르고 그 집 아들이 죽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문제적 인물 찰스는 특이하고 불가해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지독한 면이 있음을 모른 체할 수 없다. 누군가를 향한 지독한 사랑, 그것을빙자한 집착, 연민을 가장한 시혜적이고 고압적인 태도, 모든 상황을 내 식대로 해석하는 오만함,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과 허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까지도. ​고전의 기능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바다여, 바다여]는 고성능이다. 부끄러웠다.

이 책은 찰스 애로비의 자서전 형태로 진행되고 '역사이전', '역사', '역사 그 후의 이야기'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내용은 대체로 이어지며 길고 지난하지만 명문장이 쏟아지기도 한다. 이 책을 추천한 S는 찰스만큼 밀도 높은 인물을 근래에 못 만났다며(너무 재밌었고) 늘 읽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아이리스 머독을 이 참에 읽게돼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독서모임의 순기능이다)

나도 그만큼 좋았다. 사실 나는 중반부 이후까지 작가가 남성작가인 줄 알았고 철학교수인 줄도 몰랐으며 주인공의 허세와 뽐냄, 여성편력에 질려버려서-특히 매우 연상의 여자의 꼭두각시처럼(?) 이용하는 모습에혀를 내둘렀다- 이 책을 어떻게 읽지, 고민도 했는데 끝까지 읽은 지금은 S가 말했던 문학성과 깊이, 찰스와 제임스, 혹은 다른 인물들이 말하는 감정과 이성과 철학적 사고들, 다면적인 인물과 나 스스로에 대한 고찰들 때문에 좋았다는 결론이다. 고독하게 읽어 내려가는 시간 속에 차분하게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급변하는 사회의 바쁜 현대인들은 독서도 급하다. 빠른 전개, 자극적인 서사 혹은 섣부른 결론, 짙게 깔린 복선과 스릴러적 요소들에 선호도가 높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리스 머독의 소설은 높은 계단을 오르듯이 차곡차곡 올라간다. 충격적인 비바람을 견디고 오른 계단의 끝에 곤두박질 칠 서스펜스가 남아 있을 거란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다. 오른 후에는 또 길, 계속 걸어야 할 그것뿐이다. 하지만 인생이 다 그런 게 아닐까?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지만 막상 올라가면 지형의 모습과 관계없이 또 걸어야 하는 게 인생이다. 바다에 들어가 내내 헤엄치다 보면 또 바다고, 또 바다인 것처럼. 바다도 인생도 다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특이한가? 우리는 이성 보다 더 훌륭하고 비밀스럽고 생명력 넘치는 분주한 내적 본질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자기만족이라는 빛에 의하여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성자가 아닌 이상 그렇게 살아야 한다. ​
2권, 397쪽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 자라서 잘 못 배운 사랑, 대체로 해결되지 않았던 진정한 사랑의 의미,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자아 때문에 찰스는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랑만을 하고 살지만 그의 자유로움은 외로움과 다른 이름이 아니어서 밉기보단 슬프다. 과거의 어느 울타리에 감정의 밧줄을 매어 두고 그곳으로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니 그것이 여전히 탄탄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찰스의 마음은 회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사랑이라면, 찰스가 하고 있는 외로운 싸움이 진정 사랑이라면 -누굴 향해서든- 내가 뭐라고 부정할까. 내게도 그렇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원망과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회한이 있었는데! 오히려 찰스는 솔직한 사람이다. 나는 그 지독한 상처를 인정하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렸으며 끝까지 갈 용기도 없었다.


소설의 장점은 새로운 인물을 가장 고요하고, 안전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성공이다. 온갖 회한으로 점철돼 많은 이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만큼 자기 생에 충만했던 노인 한 명을 만났다는 것에 또 한 번 소설의 장점을 경험했다. 머독의 소설은 새로운 결심을 주었다. 오래된 마음의 비망록을 서고에 쌓고 비애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말자고. 가지 못한 길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는 성숙과 함께.

그러므로 3배 거울도 가끔은 들여다볼 만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전이 삶의 등불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