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옥의 간수는 누구인가?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고.

by 리다리
이선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자기가 돌아가야 할 집이, 매일 밤 올라가야 할 층계와 위층에서 자기를 기다릴 여자의 끔찍한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p.150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인 경우에 독자는 주인공의 사정에 완전히 이입한다. 그가 부도덕적이거나 내로남불의 전형일 뿐이어도 그의 불행에 함께 흐느껴줄 준비가 돼있다. 문장이 매력적이면 더욱 그러하고, 작가가 좋으면 흠뻑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비겁한 사랑꾼 이선 프롬에게 나 나름의 동정을 표시하면서도 그의 우유부단이 참 여러 사람 고단하게 하는구나 싶어서 혀를 찼다.

이선 프롬의 이야기는 낯선 사내로부터 시작되지만 결국 이선 프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액자적 장치일 뿐이다. 흔히 마을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는데 비해 이 이야기는 본인의 입으로 들려주고 문제적 인물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이선 프롬은 소년일 때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고, 병간호를 같이 해주던 연상의 여인 지나와 얼떨결에 결혼했다. 세월이 흘러 지나 역시 엄마와 비슷한 신경쇠약 등으로 거동이 힘들다. 게다가 그녀는 늘 투덜댄다. 이선은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집안 형편과 아내의 병시중에 질려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봄볕 같은 아이 매티가 하녀로 온다. 매티는 지나의 먼 친척으로 보수 없이 이선의 집안일을 도와준다. 늘 자유롭고 밝고 명랑한 매티는, 늘 불평불만에 아프다고만 하는 지나와 격하게 비교되면서 이선에게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준다. 둘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선은 점점 매티를 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의 관계를 눈치챈 건지, 아님 정말 필요에 의해서인지 지나는 매티를 돌려보내고 새로운 하녀를 구하기로 한다. 매티를 붙잡을 수 없는 이선은 그녀를 데려다주겠다고 부득불 집을 나섰다가 매티와 함께 마지막 썰매로 몸을 날린다.

책을 읽다가 상당히 충격받았다. 이선이 주인의 위력을 가지고 매티를 범하거나 찐 사랑을 증명코자 달아나는 길을 선택할 줄 알았다. 그도 아니면 지나를 독살하거나, 내쫓거나! 하지만 도덕적 규범을 어길 수 없던 이선은 차라리 매티와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이럴 수가.

어쩌면 본인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인생 자체의 무력감에 젖어 아무런 자기주장 없이 살던 이선 프롬은 그제야 드디어 거의 처음으로 자의적인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매티를 보낼 수도, 지나를 버릴 수도 없는데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별의 초침 속에서 결국 선택한 것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적어도 혼자 그렇게 생각한- '죽음'뿐이었다. 그마저도 실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선은 죽지 못했다. 살아버렸다. 그리고 매티는 불구가 됐다. 그녀는 다시는 춤추지 못하고, 걷지 못한다. 그러나 평생 이선과 살게 됐다. 물론 지나도. 그 셋이 응접실에 앉아서 손님을 맞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살아가면서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몇 개나 있겠는가. 그나마 이마저의 자유라도 허락된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해 평생 무력감에 젖어서 살바엔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의지로 무언가 해보는 것은 추천할만하다. 하나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또 자기 책임이 되고야 만다. 무엇이 됐든 당신의 선택, 그리고 책임.

아픈 가족을 오래도록 돌봐야 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렇지 않은 집에 비해서 특정 인물이 부당함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나는 자기를 괴롭히는 걸 즐거움으로 삼는다"라는 이선의 말이 맴돈다. 정신적으로 반복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이선 하나만 본다면 너무도 안타까운 스토리다. 가장의 무게,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사랑하는 여자 사이에서의 갈등, 남들 눈을 의식함과 동시에 아직 버리지 못한 자존심, 금전적 부담, 남자다움 등 인간 하나로만 봤을 때 동정의 마음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답답하다. 어린 매티를 데리고 자살을 결심할 정도라면 차라리 용기 있게 도망가겠다. 깨져서 울며 불며 돌아올지언정!

하지만 나는 매티의 입장에 선다. 매티는 최대의 피해자다. 내가 알기론 매티는 그를 유혹하지 않았다. 정이 든 것도 사실이고, 매티가 이선을 밀어내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린 나이에 불구가 될 정도의 불같은 사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매티는 이선에게 갇혀버렸다. 이선이 예언한 대로 그녀와 같이 살고, 같이 눕게 되었다. 하지만 영영 매티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자주적 삶은 가족 때문에 좌절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렇다고 가족만 탓하고 있는 것은 무력하고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목을 옭아맨다고 생각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결정이다. 스스로의 양심 때문에, 남들 눈 때문에, 떠난 후에 일어날 모든 일 때문에 자주적으로 선택한 일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갈 거면 가버리는 게 더 의리 있는 일이다. 평생 저렇게 끼고서 괴롭히는 것보다는. 이선 프롬은 두 여자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눈이 와도 남을 태우고 말을 몬다. 이선의 집은 거대한 감옥같이 느껴졌다. 죄수는 셋, 그럼 누가 간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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