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 Feb 03. 2021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나요?

글쓰기와 우리


이 책은 세종시 꾸메 문고에서 에세이 수업을 받은 학인들이 자기들의 글을 엮고 펀딩을 통해 출간하게 된 수기집이다. 수업을 진행하고 책을 기획한 사람은 [엄마가 필요해]와 [스텝이 엉키지 않았으면 몰랐을]의 작가 은수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글쓰기입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 중에서



이 책을 차례로 읽고 있자니 왜 빨래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미지근한 물에 세제를 풀어 두드리고 여러 번 헹구어 물기를 꼭 짠 뒤 볕 좋은 날 앞마당에 널어놓은 빨래.

빨래는 빨기 전에는 입기라는 작업이 수반된 후일 테다. 종류에 따라선 닦기 이전일 수도 있고! 아무튼 세탁기에 들어가거나 세탁부의 손을 거치는 순간보다 의미 있는 것들로 변신, 다시 쓸모가 생긴다.



오래전 나는 은수 작가의 에세이 교실에 참여하고서 의미 있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전에도 글은 항상 가까이 있었지만 글쓰기로 나를 치유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주제들로 나를 마주 보고 글로 나를 만지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응축된 상처의 조각들이 펼쳐지고 바래고 희미해지는 것을 보았다. 언어로 내뱉어 둔 모든 감정들이 어린 나이에 결혼해 어른이 채 되기도 전에 육아와 살림을 도맡으면서도 짬짬이 가계에 보탬이 돼야 했던 지친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우주의 전부였던 큰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가장 증오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의 그 상처를 싸매어 치료할 수 있었다. 같이 읽고, 같이 나누며 그 일을 해냈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결혼해서 15년 동안 내 감정은 어쩌면 쓸모를 잃고 구겨진 빨래일지도 몰랐다. 친구들이 승승장구할 때 나는 실망하지 않으려고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해, 나는 육아에 소질이 있어, 나는 남편 잘 만났어.' 라며 거짓으로 나를 다독이던 그때는 다 입어서 땀내가 절고 오물이 튄 빨래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글쓰기는 구겨진 내 감정을 세척하고 건조하고 다림질까지 해두었다. 그때 그 감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내 글은 세 꼭지뿐이었지만 나의 이름을 박고 나의 묵은 감정을 글로 엮어 공개하던 그때의 벅참을 잊지 않고 있다.


아마 은수 작가와 함께 만든 에세이집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나요]의 저자들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 '내가 가는 길이 맞나?', '과거의 나는 어디에 있지?' , '현재의 나는 어떻지?' 평소에는 고민하지 않는다. 의문이 사라지지 않은데 현실의 피로만 켜켜이 쌓일 때 글짓기는 나를 마주하는 좋은 통로가 된다. 글로 완성한 나의 이야기는 절대적 피로를 가시고 감정의 오염을 부순다.



나와 함께 달려준 모닝구로부터 나의 밤을 책임져주던 맥주 한잔, 조금씩 조금씩 길어져가던 나의 달리기, 가지고 있어야 풍요로운 줄 알았는데 버릴 땐 버려야 했음을 아는 지혜까지도 결국은 저자들이 자기를 마주 보고 삶을 가치 있게 하는 작업이었음을 나는 안다.

착한 사람 증후군에 시달리면서, 걷고 또 걸으면서 , 사랑의 대가로 생각지도 않게 섬에서 살게 되면서, 취미를 갖게 되면서 힘든 일상으로부터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까지도 어렵지만 나에 대해 철학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을 테다. 무엇을 쓸지 고민했던 모든 시간까지도 즐거운 추억이 되겠지.

완성된 글을 싣기까지 여러 번 고치고 다듬으면서 본인만이 갖고 있던 빛이 아름답게 발색되었을 것이다.

기성작가들의 글에 비견하겠냐마는 지금만큼은 우리가 최고의 작가다. 나는 그들의 삶을 모르기에 감히 평가하진 않는다. 다만 글이 완성되어서 서로 발표할 때의 그 떨림과 완벽히 퇴고된 글을 편집부로 넘길 때의 시원함과 결국 내 책을 받아 들었을 때의 환희를 잊지 않고 계속 글을 써주시기를 감히 강권한다. 다시 한번 쨍한 하늘 아래 희게 펄럭이는 빨래가 돼주시기를! 나도 여러분도!!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이 어떤 울림을 가지는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 울림을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순수한지 아니면 냉소적인지, 알마나 감상적인지, 실망스러운지 분노해 있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자기 결정] 중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